4·13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 구심점 없이 표류하고 있다.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다되도록 사퇴한 지도부를 대체할 리더십도 못 세우고 있는 사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기업 구조조정 이슈도 야당에 뺏겼다.
여당의 무기력증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했다.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사들은 두문불출하고 있다. 한껏 몸을 낮춘 채 소나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비박(비박근혜)계도 주기반인 수도권에서 대거 낙선, 대안세력이 못되고 있다. 당내 소장파들은 ‘당청 관계 재정립’ ‘계파 해체’ 등을 주장하지만 이 역시 단발 공세일 뿐 ‘정풍운동’으로 번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선거 패배로 유력 차기 주자들이 대권 레이스를 포기할 지경에 내몰렸다는 점도 당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총선 후 당과 김무성 전 대표의 지지율이 급락한 데다 친박계가 차기 카드로 염두에 뒀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당 관계자는 22일 “문재인, 안철수 2강 체제가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후보는 ‘도토리 키 재기’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친박이 밀면 반 총장도 가능성이 없다’는 여론이 많아 이 대로면 정권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다음달 3일 예정된 원내대표 선출을 투표 없이 합의추대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총선 당선자의 과반을 확보한 친박계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원내대표 경선을 밀어붙인다면 계파 갈등에 대한 국민 거부감이 희석되기는커녕 ‘국민과의 대결’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아이디어다. 하지만 합의추대 가능성은 높지 않다. 주류인 친박계가 여전히 원내대표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다.
결국 새누리당 혼자 힘으론 ‘홀로서기’가 힘든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김수한 전 국회의장)’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당 상임고문인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문제의 핵심에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박 대통령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친박, 진박하면서 진영논리에 휩싸여 지내왔던 세월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데 대해 국민들 앞에 ‘모든 게 내 칙임이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스스로 친박 해체 선언을 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탈탕’까지 불사하는 초당적 협력 자세로 국정운영 방향을 바꾸는 데 여당의 살길이 있다는 고언도 나온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친박계를 통해 여당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이어간다면 노무현정부 임기 말 대규모 탈당으로 사실상 당이 쪼개졌던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정권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은 ‘몰려서’ 또는 ‘주도적으로’ 초당적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여야 당 대표 회동 정례화를 통한 현안 해결만이 레임덕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친박계 이정현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야당과 더 협의하고 타협할 수 있도록 자세나 행태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이슈분석]무기력증 빠진 여권 생사의 키는 '박근혜'가 쥐고 있다
입력 2016-04-22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