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소녀(少女) 50명이 모여 사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된다. 소녀들은 자신이 이 섬에 있다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다. ‘비행 청소년’ ‘소년범’이란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이 섬은 한 순간 실수로 비행을 저질렀지만, 처벌 대신 교육과 보호로 아이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소년보호시설. 이른바 ‘6호 기관’이다.
‘백조’를 꿈꾸는 ‘미운오리’들
21일 오후 2시 서울의 한 6호 기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A양(16)이 말간 얼굴로 교실 앞 칠판을 응시했다. A양은 올해 초 이곳에 들어왔다. 노란색 머리카락과 그 뿌리에 수㎝ 길이로 자라난 검은 머리카락이 A양의 생활 기간과 과거 일탈을 떠올리게 했다. A양은 최근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함께 시험을 친 22명 중 15명이 중학교 졸업장을, 5명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시설 관계자는 “A양은 비록 또래보다 조금 늦었지만 내년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소년 사건은 소년법에 따라 1~10호 처분으로 나뉜다. 소년부 판사들은 아이들의 비행 정도와 나이,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처분을 결정한다. 1~5호 처분의 경우 보호관찰이나 사회 봉사활동으로 끝난다. 그러나 7~10호 처분을 받을 경우 소년원에 가게 된다.
6호 처분은 그 사이에 있다. 법원은 ‘소년원에 보내는 것보다 사회와 잠시 격리하는 게 나은’ 아이들에게 6호 처분을 내린다. 가정에 보호자가 없거나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할 우려가 있는 경우, 가출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 대상이다. 이곳에는 A양과 같은 아이들 50명이 모여 산다.
교실 벽면은 아이들이 다짐을 적은 글로 빼곡했다. ‘죄를 지어 재판을 받고 이곳에 오게 됐다. 내가 한 만큼 받은 것이다. 앞으로는…’ ‘내 멋대로 굴어서 가족들의 신뢰를 잃었다’ ‘여기서 세운 계획을 잘 지키고, 나가게 된다면 정말 잘 살고 싶다’
최근 아이들에겐 ‘발레’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서울가정법원의 주선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국립발레단 소속 이향조 발레리나에게 발레 수업을 듣게 됐다. 이날 소년부 법관들과 함께 시설을 찾은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아이들을 향해 “나 역시 어린 시절 실패와 우울함을 겪었다”며 “발레도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지만 뒤에는 뼈를 깎는 연습과 남모를 고통이 있다. 이곳 생활에서 많은 걸 배우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보호시설이 없어 소년원에 보냅니다
6호 처분의 의미는 처벌이 아닌 ‘보호’에 있다. 가정법원의 한 법관은 “6호 처분을 받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폭력·성적 학대 등을 경험하고 우울감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아이들은 보호기관의 교육·관리를 받으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년보호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전국의 6호 기관 15곳 중 소년 보호·치료시설은 7곳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정원 초과 상태’다. 소년원은 법무부에서 관리하지만 6호 기관은 종교단체 등 민간 기관이 운영을 전담한다.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6호 기관 ‘나사로의 집’은 지난해 재정지원 중단으로 폐쇄위기에 몰렸다가, 가까스로 올해 지원을 받아 운영을 재개했다.
소년부 판사들은 “아이들에게 6호 처분을 내리기 전에 전국 보호시설에 전화를 해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시설에 더 머물고 싶어도 다른 아이가 대기하고 있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호와 관심을 받으면 더 나아질 수 있는 아이들을 소년원에 보내거나 원래 가정에 돌려보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아동보호치료 시설의 재정지원은 전적으로 지자체의 몫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의 ‘혐오 시설’이란 민원과 예산 낭비라는 지적에 지자체는 지원은커녕 운영 사실조차 되도록 알리지 않으려 한다”며 “국가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6호 기관’에 숨어 사는 50명 소녀들, 백조 꿈꾸다
입력 2016-04-23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