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호주로 몰려들던 해외이민 투자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호주 정부가 회심의 카드로 꺼내들었던 투자 이민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보이면서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호주가 지난해 7월부터 수정 실시한 이 정책이 예상보다 현저히 저조한 신청률을 보이며 유명무실화 되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정책은 애초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투자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호주 정부가 꺼내든 대응책이었다. 500만 호주달러(44억3200만원)로 사실상 영주권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투자금을 유치하겠다는 의도였다.
다른 국가에서 축소하거나 폐지한 정책이지만 기대는 컸다. 투자전문회사 골드만삭스도 이 정책에 따라 호주가 한 해에 2100건 신청을 받을 시 약 100억 호주달러(약 8조8600억원)를 투자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정책이 시행된 지 9개월이 지났음에도 신청자는 98명에 그치고 있다. 이중 통과된 것은 10건뿐이다. 제도가 바뀌기 전 마지막 12개월 동안 신청자 수가 1544명, 처리된 건수가 590건에 이르렀던 데 비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이전까지 투자비자 신청자의 90%를 차지했던 중국 부유층이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게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호주 자산관리업체 관계자는 “투자를 검토 중인 중국 투자자들 대부분이 해외 투자경험이 없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WSJ에 설명했다.
이는 이전 제도와 비교해 투자 대상이 바뀐 영향이 크다. 이전까지 호주 투자이민 제도의 투자대상은 대부분 국채와 부동산 등 안정자산이었다. 바뀐 정책 아래서는 들어온 금액 중 40%가 정부가 선정한 소규모 벤처기업으로 향한다. 중국 투자자들이 위험 높은 투자를 꺼리고 있는 셈이다. 바뀐 제도 아래서는 투자비자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꼼수’도 쓸 수 없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다.
현재 다른 국가에서는 대부분 투자이민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캐나다는 2014년 투자이민제도 자체를 ‘경제적 가치가 적다’며 없앤 데 이어 벤처-자본 비자 제도 도입 계획 역시 최근 시행을 연기했다. 미국도 비슷한 제도인 EB-5 프로그램이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영국에서도 최근 이 제도를 축소했다.
호주에서도 유명무실해진 이 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호주 감사처는 지난해 이 제도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으며, 호주생산성위원회는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새 제도 아래에서는 신청자들이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투자 자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제도 아래서 투자금을 반환해야 하는 기간은 4년이다. 일반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사이클인 8년의 절반 수준이다. 대부분의 자산 관리사들은 아직 이 제도에 맞는 투자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보수적인 중국 투자자들을 애초에 설득하려 들지도 않는다. 섣불리 위험한 투자상품을 들이밀었다가 계약 자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어서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