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지난 20일 오후 2시 중국 난징(南京)공항. 2시간 전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이코노미석에 탑승한 이상배 광주광역시 전략산업본부장이 항공기 트랩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다.
본진에 앞서 선발대로 파견된 이 본부장은 곧장 2시간여를 다시 달려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완성차 회사인 구룡(九龍)자동차 본사를 찾았다. 전기차를 주로 생산하는 구룡차는 광주에서 온 방문단을 위해 전기승합차 등을 교통편으로 제공했다.
광주시 투자유치 업무를 총괄하는 이 본부장은 숨돌릴 겨를 없이 이 회사 위홍취안(兪洪泉) 회장과 머리를 맞댔다. 김동찬 광주시의회 부의장 등 지방의원 6명도 동석했다. 연간 10만대의 전기차 등을 광주에서 생산하게 될 구룡차의 제1호 해외공장 건립에 관해 구체적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위 회장은 지난달 광주지역에 25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22일 오후에는 윤장현 광주시장이 경제단체 대표 등과 함께 구룡차를 방문한다. 2014년 7월 취임 이후 5번째 중국에 온 윤 시장은 지난 18일부터 상하이와 산시성 창즈, 허난성 뤄양에서 의료기기 수출과 관광교류 협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오는 길이다. 그는 비행기와 승용차 등을 번갈아 타고 12시간을 쉬지 않았다. 자그마한 체격에 중국풍 외모인 윤 시장은 지금까지 평균 4개월에 한 번 중국 땅을 밟았다.
*장면 2.
지난달 28일 인천 앞바다가 한 눈에 내다보이는 월미도 문화의 거리. 해변을 따라 놓인 식탁에서 한 손에 닭다리, 다른 한 손에는 캔맥주를 든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4500여명들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꽃을 피웠다. 중국 모 화장품 유통업체에서 포상휴가를 받은 이들은 TV 화면을 통해 본 드라마 속 관광지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됐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너나없이 닭을 안주삼아 맥주를 들이켰다. K팝 공연과 한국무용이 펼쳐지는 가운데 치맥(치킨+맥주)파티를 하던 유커들은 춤을 추거나 기념촬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인천 치맥파티는 전주곡에 불과하다. ‘치맥축제’의 원조격인 대구에는 연말까지 8만9000여명의 유커들이 몰려온다. 중국 27개 지역에서 270여편의 전세기가 한국을 향해 꼬리를 무는 것이다. 오는 7월27~31일 개최되는 ‘대구치맥축제’ 기간동안 유커들의 한국 방문은 절정을 이룰 예정이다. 지난해의 경우 5일간 진행된 이 축제를 찾은 국내외 방문객은 88만1500명, 팔린 치킨은 33만여 마리, 캔맥주는 70여만 개에 달했다.
중국대륙을 점령한 한류 열풍을 계기로 중국 자본과 유커를 유치하려는 전국 지자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20세기 말 미국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양대강국(G2)으로 급성장한 중국을 향한 자발적 구애(求愛)다. 거대 자본유치를 통해 경제발전을 꾀하고 씀씀이가 큰 유커들을 불러 모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영·호남, 충청, 강원, 제주 가릴 것 없이 국내 대다수 지자체들이 중국과 친해지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올 들어 활약이 두드러진 곳은 빛고을 광주광역시다. 낙후된 경제여건 개선을 위해 외자유치에 눈을 돌린 광주시는 민선6기 핵심과제인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첫 단추를 뀄다. 지난달 16일 광주시 비즈니스룸에서 구룡차 어우양광 부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기차 생산공장 투자협약을 맺은 것이다. 중국 완성차 업체의 국내 투자는 처음이다. 구룡차는 오는 2020년까지 2500억원을 투자해 완성차·부품공장을 건설하게 된다. 구룡차는 중국 토종 완성차 업체로 오는 7월부터 광주공장 설계에 들어간다. 이어 광주지역 연관업체들과 협력해 연말까지 시험용을 겸한 상업용 전기차 200여대를 우선 생산한다. 2017년부터는 15~18인승 전기승합차 E6의 양산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시는 구룡차와 협약한 투자가 마무리되는 2020년에 이 회사가 전기승합차와 휘발유·경유차 등 10만대의 자동차를 광주에서 생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구룡자동차 위홍취안 회장은 21일 광주시 방문단과 만난 자리에서 “동남아 수출에 유리한 목포 자동차 전용부두의 매력과 우수한 기술력 등에 이끌려 광주 투자를 결정했다”며 “투자협의 과정에서 자동차산업 육성에 대한 광주시의 매우 강렬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 투자유치에 공을 들여온 충남도의 성과도 광주시에 뒤지지 않는다. ‘세계의 공장’인 동시에 ‘세계의 시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짭짤한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충남도는 지난해 중국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전문 전력회사(CGN 메이야 파워 홀딩스 컴퍼니· Meiya Power Holdings Company)와 대규모 투자협약을 했다. 이 회사와 모기업인 CGNPC는 협약에 따라 오는 2020년까지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16만5508㎡에 9000억원을 들여 경유발전소를 대신하는 우람한 LNG복합발전소를 세운다. 1994년 설립된 국영기업 CGNPC는 중국과 국내에서 다수의 원자력과 풍력 태양광 발전소를 보유·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린 지앤 사장은 “중국과 충남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 함께 할 일이 많다”며 지속적 투자의지를 내비쳤다. 강원도는 2018년까지 바다경관이 빼어난 강릉시 정동진 일대 50여만㎡에 조성하는 ‘차이나 드림 시티’에 ‘차이나 머니’를 대거 유치할 계획이다. 중국 투자자들로부터 200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아 호텔과 콘도 쇼핑몰 등을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한국 투자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신고 금액 기준으로 무려 9조원 대에 달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각각 7조5000여억원과 1조1000여억원으로 가장 많다. 전기·가스·건설·광업·농수산 분야의 투자도 증가추세다. 중국의 투자분야는 보험과 증권 자산관리 등 금융은 물론 의약분야까지 앞으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전국 각 지자체는 이 같은 자본유치와 더불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각된 중국 관광객 유치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인천관광공사를 부활시킨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등 대한민국의 관문이라는 강점을 살려 유커 유치에 힘찬 시동을 걸었다. 유커를 집중 유치하기 위한 ‘인-차이나(IN-CHINA·인천-중국’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중국인들이 국내에 체류하면서 자국 문화의 향취를 느껴볼 수 있는 인천차이나타운도 적극 활용한다. 시는 2020년까지 영종도 지역에 대규모 복합리조트 3곳을 집단 조성해 명실상부한 ‘유커 천국’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의 특색을 담은 거리·문화 축제와 풍부한 관광인프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유커들의 발길을 붙잡을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경기도는 회의와 관광·전시·이벤트를 총칭하는 일명 마이스(MICE) 인센티브 관광단 유치로 승부를 걸었다. 지난달 월미도에서 치맥파티를 즐긴 유커들처럼 중국 기업에서 포상 휴가를 받은 단체관광객들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두둑한 포상금을 챙긴 이들은 가족·연인 단위 관광객보다 숫자도 많고 주머니 사정도 상대적으로 넉넉하다. 경기관광공사는 경기지역 물가가 서울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가격에 비해 시설과 서비스가 뛰어난 경기지역의 숙박시설에 머물면서 서울 도심 면세점과 쇼핑센터를 이용하면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오는 5월 5~13일 중국 중맥건강산업그룹 임직원 8000여명의 ‘포상 관광객’ 방문이 확정된 서울시도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맸다. 한동안 제 발로 찾아오는 관광객만 맞이하던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유커를 불러들이고 있다. 서울시는 엔저 현상으로 일본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유커 모시기에 더욱 정성을 쏟고 있다. 서울시는 명동과 남산 경복궁 광화문 등 전통적 관광·쇼핑 명소를 활용하고 ‘바가지 쇼핑’을 철저히 단속해 유커의 재방문을 유도하기로 했다. 서울 강남구는 어린이날 연휴 마지막 날인 다음달 8일 중국 단체 관광객 4000여명이 참여하는 말춤파티를 펼친다. 중국 기업과 자본가들의 투자가 국내경기와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 지자체들은 중국자본 유치에 매달리고 있다. 정부도 지자체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 6월 21개 부처에 ‘외국인투자전담관’을 배치했다.중국 등 외국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꾀하려는 목적이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친해지기 지원센터 최유미(호남대 공자아카데미) 팀장은 “유커라는 말이 생소하던 10여년 전까지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찾는 도시는 고작 서울과 제주, 경주에 불과했다”며 “각 지자체가 중국 자본과 유커 유치를 두고 경쟁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경계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양저우=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지자체, 중국자본과 유커 유치 통해 지역발전 이룬다.
입력 2016-04-21 18:59 수정 2016-04-21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