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인연 만나고 싶어요” 사랑할 권리 찾는 장애인들

입력 2016-04-20 08: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용기가 안 나고 자식을 낳았을 때 유전이 될까봐 걱정됩니다.” 지난달 장애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한 회원이 자신의 고민을 남겼다. 이 회원은 이어 “선천적으로 왼쪽 손가락 3개가 없는 21세 지체장애 5급 장애인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른 회원은 “장애인도 충분히 사랑할 자격이 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장애인 연애가 힘들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만남의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카페에는 ‘애인 구합니다’라는 게시판도 있다. 짝을 찾는 장애인들이 매달 약 20건의 글을 올리고 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리도 ‘사랑’할 권리가 있어요

“만날 데가 없는 줄 알았어요.” 지체장애 1급인 원모(42)씨는 여성 장애인들을 만날 생각에 들 떠 있었다. 원씨는 오는 30일 대구광역시장애인재활협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맞선 대회’에 참가한다. 벌써 4번째 참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참석했는데 매년 가다보니 마음에 드는 인연을 만나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원씨는 태어나고 백일 쯤 됐을 때부터 지체장애를 앓게 됐다. 고열이 나면서 경기를 일으켰는데 당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원씨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힘들다.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지금은 장애인 연금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몸이 불편해 이성을 만나기 어렵다”고 말하던 원씨는 이제 “꼭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일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그동안 이성을 만날 노력을 하지 않던 강희정(35·여)씨도 올해 장애인 맞선 대회에 참가한다. 강씨는 그동안 일을 하느라 연애는 뒤로 미뤄뒀다고 했다. 한번 남에게 의지하기 시작하면 계속 의지하게 될까봐 일부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왔다. 도서관에서 사서 보조로 일하거나 간단한 아르바이트 등을 계속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결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나이가 됐다.

강씨는 ‘그날’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이 타고 있던 학원 차가 기차와 부딪혀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당시 6살이던 그는 아직도 학원의 위치와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같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크게 다쳤다. 강씨는 이 사고로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사고 이후 뇌병변 장애 2급을 앓게 됐고 오른손은 전혀 못쓰게 됐다. 강씨는 “이제야 좀 (장애에 대한) 마음이 열렸다. 기댈 수 있는 장애인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성을 만나고 싶은 장애인들을 위해 관련 단체들은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등은 지역별로 장애인 맞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상북도장애인재활협회는 1996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모두 20회에 걸쳐 장애인 맞선 자리를 주선했다. 그동안 1636명이 참가했고 366쌍의 커플이 맺어졌다. 이 중 결혼까지 이어진 커플도 23쌍이나 된다. 2006년 맞선 프로그램을 시작한 강원도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맞선 사업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사회적 고립 안돼…‘장애인의 사랑’ 관심 가져야

강원도 정선에 사는 전재우(53) 한금숙(52·여) 부부는 2011년 맞선 프로그램에서 만나 2014년 10월에 결혼했다. 남편 전씨는 지체 장애 2급이고 부인 한씨는 뇌병변 장애 3급이다. 한씨는 10여년 전 뇌출혈로 장애를 앓게 됐다. 2011년 주변의 권유로 맞선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평생 힘들지 않게, 마음고생 안 시킬게. 같이 살자”고 프러포즈를 했다고 한다. 한씨는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좋은 사람 만나 ‘서로 의자하며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응답자의 54.7%가 ‘현재 배우자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결혼 당시 본인이 장애가 있었던 경우는 24.2%에 그쳤다. 대부분은 결혼 이후 장애를 얻은 것으로 해석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에 응답자의 45.7%는 ‘건강 및 장애문제’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보고서는 장애인이 가족을 구성하지 못하면 사회적 고립 현상을 가져 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지금까지는 주로 장애인연금 등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왔지만 앞으로는 장애인의 삶과 사회적인 관계 등도 고려해야 한다”며 “‘장애인의 사랑’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판 임주언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