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이명호(41)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무단 도용했다며 영국 출신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를 상대로 미국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작가는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 10월 19일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 저작권법과 랜험법(연방 상표법)에 근거해 저작권 침해 인정 및 손해배상,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오는 7월 재판이 예정돼 있으며 소송 가액은 200만 달러(약 23억원)에 달한다. 법무법인 정세의 김형진 변호사가 소송을 대리하며, 법무법인 정세는 샌프란시스코의 법무법인 코머를 미국 측 파트너로 선정했다.
그리스 태생의 마리 카트란주는 런던에서 데뷔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이다. 건축 사진 등 사진작품을 이용한 옷으로 이목을 끌었다.
소송을 촉발한 문제의 작품은 이 작가가 경기도 안산 시화호 갈대 습지에서 2012년 말 찍어 2013년 초 완성한 작품 ‘나무…#3’이다. 이 작가는 “내 작품은 캔버스를 나무 뒤에 설치해서 찍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서 “자연물인 나무인데, 뒤에 캔버스를 배경으로 둠으로써 그 의미가 달라지게된다. 예술의 본질을 묻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카트란주가 토트백(795유로·약 103만원)과 반팔 상의(520달러·약 60만원) 제품에 이 작품의 이미지 일부를 무단으로 도용하고 변형시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화호 갈대밭은 이 사진을 찍은 바로 직후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면서 “따라서 유사한 방식을 써서 재촬영했다기 보다는 제 작품을 포토샵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원작품 속 나무의 가지를 일부 다듬고, 가로 길이를 늘려서 약간의 변형을 가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표현 자체가 표절되었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표현이 아닌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작가는 지난해 4월 지인의 제보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문제의 토트백과 상의가 판매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청담동의 한 패션 매장에서 실물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현재는 제품들이 철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형진 변호사는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는 차용미술과 표절의 경계를 분명히 해준 판례가 없다. 반면에 미국은 샌프란시스코의 팝 아트 작가 제프 쿤스 표절 소송에서 보듯 저작권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해주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 작가가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왔고, 디자이너 카트만주가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해당 제품을 판매해온 사실도 고려됐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지게 되면 순수 예술에 대한 상업적 도용의 둑이 무너지게 된다”면서 “상대측에서 합의 요청이 있지만 작가들의 저작권 보호라는 공익적 성격이 있는 만큼 끝까지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일대학교 교수인 이 작가의 ‘나무’ 시리즈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대원원에 재학 중이던 2004년부터 시작해왔던 ‘사진-행위’ 프로젝트이다. 살아 있는 야외의 나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한 뒤 사진을 찍는 것으로, 캔버스 속에 나무가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내 작품 베껴" ...'나무 작가' 이명호 미국서 소송
입력 2016-04-18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