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안지현(18)양의 하루는 오전 6시가 조금 넘으면 시작된다. 자폐증이 있는 지현이는 씻고 머리를 빗고 밥을 먹는 모든 과정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조금 느린 지현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준비시간이 더 걸린다. 학교 가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 집에서 15분 거리에 일반 고등학교가 있지만, 지현이는 1시간30분 걸리는 구로구 궁동에 있는 특수학교인 정진학교에 다닌다.
지난 15일 지현이는 평소처럼 오전 7시10분 집을 나섰다. 검정 바람막이에 검은 면바지를 입은 지현이는 남색 책가방을 메고 10분 떨어진 통학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7시25분쯤 노란색 3호 통학버스가 도착했다. 내내 말이 없던 지현이는 익숙한 듯 버스에 올라 중간쯤에 앉았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지현이는 시간이 지나자 졸린 듯 연신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통학버스 이용학생들의 버스 탑승을 돕는 차량 실무사 윤모(54)씨는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라며 “지현이가 고1 때 전학 왔는데 적응하기 힘들었는지 처음에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현이 어머니인 이은자(46·주부)씨는 “통학거리가 멀어 처음엔 지현이가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정진학교에 가게된 건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땐 특수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이씨는 “초등학교 땐 국·영·수 등 주요과목은 특수학급에서, 미술, 음악 등은 일반학급에서 비장애인 친구들과 공부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학교 때 특수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자리가 없어 입학을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는 집 가까운 특수학교에 보내고 싶었지만, 가장 가까운 곳이 정진학교였다.
현재 전국에는 170개 특수학교가 운영 중이다. 올해 경기도에 2곳, 세종시에 1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서울에는 지역주민들 반대로 14년째 특수학교가 한 곳도 새로 지어지지 못했다.
건강한 사람도 매일 2~3시간 통학은 쉽지 않다. 정진학교 송연호(57) 교무부장은 “통학거리가 늘면 아이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건강이 악화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현이의 담임인 마미화(49·여) 교사도 “길게 통학하는 친구들이 더 피곤해 한다. 자폐를 가진 학생들은 통학시간이 길어지면 더 예민해져서 말투와 행동이 날카로워진다”고 말했다.
지현이는 태운 버스는 가양동, 등촌동, 목동, 신정동 등 강서·양천구 일대 14개 정류장을 돌아 학생들을 태우고 오전 8시43분쯤 학교에 도착했다. 영등포, 구로, 방화, 고척동 등에서 모여든 7대 통학버스가 속속 학교로 들어왔다. 지현이도 버스에서 내려 고등부 2학년 4반 교실에 들어갔다. 교실에 도착해서야 지현이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소리 내 웃기도 했다. 송 교무부장은 “교육청은 통학거리를 1시간 내로 권고한다”며 “사람들이 장애인의 교육문제를 ‘내 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은애 오주환 기자 limitle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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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19 00:02 수정 2016-04-19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