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 “몇 분이 봐주시든, 늘 같은 마음으로” [인터뷰]

입력 2016-04-17 15:34 수정 2016-04-17 15:40
김지훈 기자

짙은 쌍꺼풀, 동글동글한 이목구비, 그리고 포동포동한 손가락. tvN ‘응답하라 1988’(응팔)의 정봉이를 다시 만난 듯했다. 하지만 ‘봉블리’와의 반가운 재회는 여기까지. 배우 안재홍(30)은 벌써 멀찌감치 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응팔 덕분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니 감사하고 기분 좋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마주한 안재홍에게 응팔 이후 첫 주연작을 내놓는 소감을 묻자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그는 곧바로 새 작품 이야기에 들어갔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영화 ‘위대한 소원’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루게릭병 환자 고환(류덕환)과 그 곁을 지키는 소꿉친구 남준(김동영)·갑덕(안재홍)의 좌충우돌 이야기다. 죽기 전 여자와 한번 자보고 싶다는 고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두 친구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취향을 타기 쉬운 ‘B급 유머’의 향연이 펼쳐진다. 안재홍은 오히려 이런 면을 영화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전체적으로 B급 코미디 정서가 가득 차있다”며 “그래서 좀 새롭고 차별화된, 그동안 잘 없었던 코미디 영화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재홍이 등장하는 신마다 웃음이 터진다. 아버지에게 얻어맞아 눈이 벌겋게 충혈되거나 건달에게 탈탈 털려 맨몸에 푸대자루만 걸치고 도망가는 식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게 의외다. 안재홍은 “리듬이 중요한 영화라서 애드리브가 자칫 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저는 원래 애드리브를 즐겨 하는 편이 아니에요. 대본에 적힌 지문을 충실하게 따르려고 해요. 왜냐면 대본 안에 아무 이유 없이 쓰인 글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지도라고 생각하고 잘 따라가는 편이에요.”


안재홍을 대중에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은 ‘족구왕’(2014)이다. 이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가볍고 친근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다. 응팔까지 터지고 나니, 그에게 코미디를 기대하는 반응은 한층 늘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와 실제 본인 성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단다.

“전 원래 낯가림이 되게 심해요.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되지도 못하고요. 친한 친구들에게는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건 어려워요. 예전에는 ‘왜 난 일관성이 없는 걸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런 안재홍이 연기의 매력에 빠진 건 대학교 1학년, 처음 학교 연극무대에 섰을 때였다.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긴장한 채 무대에 올라갔는데, 자신을 향해 숨죽여 집중하는 객석을 본 순간 짜릿함을 느꼈단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늘어남에 따라 부담감이나 책임감 또한 커질 법하다. “그렇지만 제 마음가짐이 달라지진 않는다”고 안재홍은 잘라 말했다.

“100명 앞이든 1000명 앞이든, 연기하면서 다른 마음을 가지진 않아요. 응팔 촬영할 때도 시청률 같은 걸 의식하지 않았어요. 그냥 즐겁게, 정확하게 연기하자는 생각이에요.”


족구왕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지만 안재홍은 “조급해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빨리’ 보다는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잘 걸어가고 싶다?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tvN ‘꽃보다 청춘’을 함께한 나영석 PD님이 예전에 책을 쓰셨더라고요.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는 제목인데, 그 제목이 되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아직 책을 읽어보진 않았는데…(일동 폭소). 제목만 봐도 읽은 듯한 위안을 받았어요.”

안재홍의 ‘긴 레이스’ 끝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책을) 안 읽었는데 자꾸 얘기하는 게 웃긴 거 같다”며 멋쩍어하던 그는 이내 웃음을 지우고 진지한 속내를 전했다.

“딱히 목표를 설정해놓지는 않았어요. (앞날이)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순간순간을 즐기는 게 더 소중한 거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큰 생각도 해야겠지만, 일단 현재를 좀 더 잘 바라보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