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평면도예의 새로운 시도 이흥복 작가 개인전

입력 2016-04-16 06:51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흥복 작가.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이흥복 작가의 작품. 통인옥션갤러리 제공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 5월 1일까지 물성 너머 감성공간 담은 신작 출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청마 유치환 ‘깃발’)

이흥복(56) 작가의 작품이 그랬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붉고 검고 노란 화면 위에는 저 푸른 세계를 향해 손짓하는 열정과 향수의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쏜살 같이 빠른 세월을 상징하는 화살이 되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빙빙 돌아가는 팽이가 되기도 하고, 힘겨운 세상의 중심을 잡아가는 무게추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작업은 큐브 모양의 작은 도자기들을 평면 회화처럼 반복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금속재와 나무로 만든 형태들이 큐브 도자기의 자리를 대신했다. 알루미늄 판재들을 자르고 구부려 화면을 가득 채우고 빨강, 노랑, 검정 등의 원색으로 색칠한 평면작업들은 단색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행위의 단순한 반복을 통해 정제된 감성을 싣는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물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됐다. 영남대와 미국 뉴욕 플랫 인스티튜트 브룩클린에서 공부한 작가는 도예 작업을 하면서 물질의 속성에 천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하고 어려운 속성을 깨닫게 됐다. 작가는 그런 물성을 실험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에 묶이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알루미늄과 나무로 대체된 신작은 물질은 달라졌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듯 작업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물성 너머 감성공간을 여는 일”이다. 도예의 일반적 관점에서 벗어나 추상성을 가미함으로써 도자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자유로운 질서에서 긴장과 응축, 절제와 확장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 끝에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가 깃들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내 작업은 캔버스를 칼로 찢은 루치오 폰타나의 작업에 비유할 수 있다. 기존 회화는 원근법으로 평면에 환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면, 폰타나는 캔버스를 찢어 틈새를 만든다. 캔버스에 3차원 공간을 창조한 것처럼 나는 물성의 극대화를 통해 감성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는 “단지 재료에 경계를 두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작업 과정에서 종이, 나무, 철이라는 재료에 얽매이거나 딱히 정의하지 않고 그때그때 재료의 질감에 집중하며 그 물성에서 받을 수 있는 인상을 깊게 받아들인다. 그는 작업 과정을 ‘쌓는다’고 표현한다. 무심의 경지로 재료와 함께하고 인상과 감성에 충실한 운율을 담은 결과물은 시간을 쌓아가는 자연과 닮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의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에서 5월 1일까지 열린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레드, 옐로’ 등을 내놓았다. “내 작품을 보고 요즘 열풍인 단색화 같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색에 대한 극단의 추구가 결국엔 원색 단색조와 만나게 해주었다. 물성 너머의 열려진 정신세계를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선 공통분모가 있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그의 작업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무한한 상상력의 깃발이 꽂혀 있다. 그리움과 애잔함, 단순함과 화려함, 추억과 낭만이 어우러진 깃발. 그의 작품은 미니멀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단순함에서 비롯되는 미학이다. 그의 새로운 시도가 평가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02-733-4867).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