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구석구석 만지작… 법조인 꿈꾸는 맹학교 학생들

입력 2016-04-16 00:09 수정 2016-04-16 09:18
서울맹학교 학생들이 14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03호 법정에서 판사석과 검사석, 증인석 등에 앉아 형사재판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공

1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403호 법정. 중·고등학생 15명이 허공에 뻗은 두 팔을 휘저으며 법정 구석구석을 쓰다듬었다. 손길은 ‘피고인석’이라고 적힌 명패를 지나 책상 위에 놓인 마이크, 증인석 앞 의자로 향했다.

서울고법 성낙송(58) 수석부장판사가 법대를 두드리며 외쳤다. “자, 여기가 판사님들이 앉는 자리입니다.” 아이들의 고개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일제히 돌아갔다. “내가 판사석에 앉을 거야.” “그럼 나는 검사석!”

서울고등법원은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맹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인 중·고등학생들을 법원에 초청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4월 시각장애인 김동현(34) 재판연구원을 선발했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과 김 연구원이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법정 견학은 ‘덤’으로 이뤄졌다.

김 연구원은 로스쿨 재학 중에 시력을 잃었다. 그래도 음성 교재 등을 이용하면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연구원 채용 시험에 이어 변호사 시험까지 통과한 그는 현재 서울고법 민사29부(부장판사 민유숙) 소속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은 김 연구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헌법이 기반인가요, 대한제국 헌법이 기반인가요.” “사법부가 이른바 ‘봐주기 판결’을 한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죠?”

중학교 3학년 염철빈(15)군은 “시각장애인으로 법원에서 일하며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물었다. 염군은 “2012년 시각장애인 판사로 임용된 최영(36) 판사처럼 법조인을 꿈꾸고 있다”며 “현실적 어려움이 뭔지 얘기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사실 불편한 점은 많다”고 답했다. 이어 “최영 판사님도 처음 법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계속 (불편함을) 말하니까 환경이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며 “여러분과 함께 법원에서 근무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꿈을 잃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