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으로만 먹고살았는데’... 중국 ‘브라 마을’의 몰락

입력 2016-04-15 16:43 수정 2016-04-15 16:51
출처: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캡쳐

71.8 ㎢ 넓이의 중국 광둥성 남부 구라오(谷饶) 마을 거리에는 속옷 모델이 실린 광고판이 곳곳에 서 있다. 이곳 ‘속옷의 도시’ 곳곳에 자리한 공장은 매일 여성용 브라만 2만2000개를 생산한다. 연간 생산되는 브라가 3억5000만 벌에 상하의 속옷만 4억3000만 쌍이다. 속옷 산업이 도시 매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다.

덕분에 구라오를 중심으로 속옷 공단이 자리한 샨토우(汕头) 일대는 중국의 의류 수출 전성시대를 이끈 ‘효자도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홍콩과 대만 등지 투자가들과 이주노동자가 주된 동력이었다. 중국 동부 해안지대에는 이 같은 ‘한 제품 마을(one-industry town)’이 500여 곳이다.

구라오의 한 속옷매장 (출처: 로맨틱스프링)

한 제품 마을은 중국 제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컨설팅업체 프로스트&설리반에 따르면 2014년 생산한 브라는 총 29억 벌로 전 세계 생산량의 60%였다. 같은 해 중국은 세계 신발의 63%를 생산했다. 안경테는 세계 생산량의 70%, 에너지절약형램프는 90%를 생산했다.

허나 최근 구라오 등 한 제품 마을에서 문을 닫는 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제품가가 오르는 반면 수요는 늘지 않은 게 원인이다. 단추나 넥타이, 고무 신발이나 타이어, 장난감을 생산해내던 이들 마을은 수출 일감이 줄자 불황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주된 강점이던 임금이 2001년부터 매년 12%꼴로 상승하면서 이들 마을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한 사업으로 도시 전체가 먹고사는 특성상 업종 전환도 힘들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15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발행된 최신호에서 이 같은 실태를 전했다.

구라오의 주력인 속옷 산업의 경우 빅토리아시크릿이나 라센자(La Senza) 등 유명 브랜드 공장이 더 싼 노동력과 낮은 세금을 찾아 진즉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옮겼다. 중국 브랜드 ‘레지나 미라클(중국명 維珍妮)’ 역시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인 베트남에 공장 두 곳을 지었으며 2018년까지 두 곳을 추가할 생각이다. 캄보디아와 미얀마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도 속속 중국 공장이 옮겨가고 있다.

단가가 오르면서 가장 규모가 큰 공장조차 바이어들과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게 어려워졌다. 때문에 기술 투자도 더뎌지고, 이는 다시 산업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노동집약적 저기술 산업체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국영 철강 업체처럼 앞으로 수년간 180만 명을 대량 해고하는 등의 강제 조치도 대부분이 개인사업체이기에 불가능하다. 

구라오를 그나마 버티게 하는 건 그간 잘 갖춰놓은 공급망이다. 염색천이나 레이스 등 속옷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는 현지에서 생산돼 바로 공장에 공급된다. ‘짝퉁’ 상품 역시 힘이 된다. 구라오에서는 명품 브랜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철자를 교묘히 바꾼 ‘Calven Klain’, 혹은 ‘Oalvin Klein’ 등의 상품이 버젓이 팔려나간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구라오의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반적인 견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