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어요. 팽목항이 사라지고 단원고 교실도 없애라고 하는데 여기마저 사라지면 안돼요. 없어지면 매일 1인 시위라도 할 생각이에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이정연(50·여)씨는 세월호 사고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까봐 걱정했다. 간호사로 일하는 이씨는 근무교대 시간에 짬을 내 ‘진실마중대’에 나와 세월호특별법 개정안 등에 대한 서명을 받고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년 넘게 추위와 더위에 아랑곳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정과 일만 알았던 이씨를 거리로 부른 건 세월호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이란 깨달음이다. 이씨는 “대학생 자녀가 두 명 있어요. 작은 애가 세월호 사고 날 때쯤 배를 타고 똑같이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금이야 옥이야 키워도 사고가 한순간에 아이를 앗아갈 수 있구나. 아찔해졌어요”라고 말했다.
광화문은 세월호와 직접적 관련이 없지만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이곳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뒤 정비를 거쳐 지금과 같이 세월호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이씨는 “광화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국민들이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실마중대 옆에 마련된 ‘공작소’에선 열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쌓여가는 리본은 진실이 밝혀졌으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전모(65·여)씨는 “진실이 하루빨리 밝혀지길 바라면서 리본을 만들고 있어요. 리본은 연대하자는 의미입니다. 잊지말자. 기억하자는 뜻이에요”라고 말하며 리본 만드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세월호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세월호 풍경은 홍대에 있다. 월~토요일 오후 2시 서울 홍대입구역에선 “아직 세월호 속에 사람이 있습니다”란 외침이 들려온다. 매일 보는 ‘풍경’인 듯 힐끔거림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들은 묵묵히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세월호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허다윤 학생 엄마 아빠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청와대 근처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시작한 피케팅은 홍대로 번졌다. 오전엔 청운동에서 오후엔 홍대에서 미수습자들을 가족에게 돌려달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을 지키는 것도 마음이 아파 나온 사람들이다.
자신을 엠제이(MJ)홍이라고만 밝힌 50대 주부는 “피해자 가족들은 긴 시간 지쳐 몸도 안 좋고, 특조위 열리면 거기에도 하고 팽목항 등에도 두루 다니기 때문에 이 자리를 계속 지키기 힘들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활동을 주도하는 특별한 단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고정적으로 오는 사람을 열 명 남짓이다.
그를 만난 지난달 28일은 봄이라곤 하지만 장시간 한 곳에 서있기엔 쌀쌀한 기운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날씨였다. 홍씨는 “더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계속 이 자리에 있었다”며 “날씨는 상관 없다”고 말했다.
홍씨 역시 사회운동은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다. “이건 부모건 아니건 그냥 사람이라면 슬퍼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자녀가 있어 더 감정이입이 됐겠다는 질문에 홍씨는 목소리를 높여 답했다. 이어 “여기 서 있다보면 적극적으로 리본을 받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어요.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어차피 죽은 거 인양은 해서 뭐하냐’고 다가와 말을 걸어요”라고 당시를 떠올리며 흥분했다. 홍씨는 “자기 가족이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미수습 가족은 9명뿐이라 더 목소리가 크지 못한 것 같아요”라며 안타까워했다.
4월의 봄바람은 세월호의 기억도 함께 가져왔다. 16일이 다가오면서 거리에 노란 물결이 바래졌던 세월호의 풍경에 색을 더하고 있다. 곳곳에서 열리는 추모제와 지지성명 등이 이들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렇게 두 번째 4월 16일이 다가오고 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아직 세월호에 사람 있습니다” 내 일처럼 나선 시민들
입력 2016-04-15 16:02 수정 2016-04-15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