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세월 쉼 없이 천년고도 여행한 ‘로마의 택시운전사’

입력 2016-04-14 17:38 수정 2016-04-14 17:39

“남편이 어린 여자를 찾아서 날 떠났어요.” 승객이 풀죽은 목소리로 고민을 털어놨다. 택시 운전석에 앉은 백발의 신사는 조곤조곤 답했다. “로마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교황이 죽으면, 다른 교황을 세우면 된다.”

 로마에서 50년간 택시를 몰아온 알베르토 토마시(75) 할아버지는 긴 세월 수많은 손님들의 사연을 들어왔다. 그동안 손님과 그를 태우고 로마 거리를 누빈 택시만도 8대에 이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스물다섯 나이부터 잡아온 운전대를 곧 놓기로 한 토마시의 사연을 14일(현지시간) 지면에 다뤘다.

토마시가 택시를 몰기 시작한 건 1966년 5월이었다. 영업 자격증을 얻는 데는 500만 리라가 들었다. 중형 아파트 한 채 가격에 맞먹는 거금이었다. 어렵게 얻은 면허를 들고 나선 1960년대 로마 거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뒤 활황을 맞고 있었다. 골목마다 신인 배우와 파파라치가 넘쳐났고, 성직자들과 카페가 공존했으며, 민주화의 열기가 꿈틀댔다.

토마시는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 우슬라 안드레스와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남주인공 장 뽈 벨몽도를 태우고 함께 찍은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당시 열애에 빠져있던 둘에 대해 토마시는 “정말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젊은 시절 우스라 안드레스와 장 뽈 벨몽도

명화 ‘자전거 도둑’을 만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과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도 그의 택시를 탔다. ‘만인의 연인’으로 불린 여배우 소피아 로렌도 토마시가 집까지 실어 나른 손님이다. 당대 이탈리아를 대표한 명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그를 직접 차 마시는 자리에 초대하기도 했다. 교황 바오로 6세 모실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은 클래식카 취급을 받는, 앙증맞은 디자인 ‘피아트 600 멀티피아’를 몰고 처음 로마 거리를 누빈 그에게 모르는 길은 없다. 택시마다 필수품이 된 GPS 장치 없이도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로마 거리를 앞마당처럼 누빈다. 손님이 마시는 커피만 봐도 어느 거리에서 파는 것인지 맞출 정도다.

오는 9월 75번째 생일을 맞는 토마시는 그때쯤 영영 택시 운전대를 놓을 생각이다. 은퇴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택시 면허증을 사려는 사람들도 붐빈다. 약 13만 유로(1억7000만원) 상당을 호가하는 희귀품인 까닭이다.

은퇴를 앞둔 요즘 토마시는 하루하루 일을 즐기고 있다. 택시운전 50년째를 기념해 직접 주문제작한 둥그런 은빛 스티커를 창문에 자랑스레 붙이고서다.

“택시기사 일로 부자는 못 되죠. 하지만 정직한 직업이에요.” 토마시는 택시를 몰면서 번 돈으로 자녀들을 모두 학교에 무사히 보냈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큰딸은 로마에서 교통경찰 일을 하고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