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토익, 대학, 공시까지… 인생 조작한 컨닝병자

입력 2016-04-15 00:02 수정 2016-04-15 13:13

그의 인생은 ‘부정’과 ‘조작’으로 얼룩져 있었다.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공무원시험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생 송모(26)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부정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허위로 약시(弱視) 진단서를 받아 남들보다 긴 시험시간을 보장받았고, 이를 이용해 ‘컨닝’을 했다. 그는 대학 강의에 빠질 때마다 허위로 만든 허리협착증 진단서를 내밀어 수업일수를 채우기도 했다.

경찰은 14일 송씨에게 ‘건조물침입’ ‘절도’ ‘공전자기록 등 변작’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공문서 부정행사’ ‘사문서 위조 및 행사죄’ 등 여러 개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는 왜 부정과 조직을 서슴치 않았을까.

허위 ‘약시 진단서’로 수능에서 부정행위도

2010년 제주도의 모 대학에 입학한 송씨는 그해 겨울과 다음해 겨울 다른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수능을 치렀다. 그는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의사를 속여 허위 약시 진단서를 미리 받아 제출했다. 약시 진단서를 내면 ‘저시력자 특별대상자’에 해당해 각 과목당 1.5배 연장된 시험시간을 받을 수 있다.

2010년에 치러진 수능에선 영역별로 시험이 끝나면 답안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일반 수험생보다 시험시간이 길었던 그는 고사장 화장실에 가서 숨겨둔 휴대전화로 정답을 확인했다. 이 시험에서 그는 먼저 정답을 알 수 없었던 1교시 언어영역에서 5등급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1등급을 맞았다. 하지만 지원 대학에 떨어졌다. 이듬해 수능부터는 전체 시험이 끝나야 정답이 공개되도록 바뀌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허위 약시 진단서는 토익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도 쓰였다. 송씨는 일반인보다 1.2배 많은 시험시간을 받는 혜택을 누렸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위조한 허리협착증 진단서를 제출해 6차례의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경찰은 송씨의 정부서울청사 침입을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이 수사초기에 내부 조력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할 만큼 수법은 대범하고 치밀했다.

비정상으로 진화한 ‘컨닝병자’

전문가들은 이해하기 힘든 송씨의 범죄 행위의 배경으로 ‘이기주의’ ‘윤리의식 부재’를 꼽았다. 범행을 반복하면서 습관이 되고 죄의식이 흐려지는 등 차츰 진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공정식 한국심리과학센터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행 수법을 보면 송씨는 머리가 매우 비상하다. 하지만 탈법적 방법으로 성공한 경험으로 도덕적으로는 매우 둔감해졌을 것”이라며 “이기주의가 자신의 가치관을 지배하게 되고 습관적으로 부정을 일삼으면서 죄의식을 못 느끼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인이 된 이후 갑자기 비도덕적 행위가 발현되기는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심리적 학습효과와 강화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됐을 때 주어지는 불이익보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과 이득이 상대적으로 컸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심리적 ‘강화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 번 터득한 ‘쉬운 해결법’이 ‘직업적 범죄’로 발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신과 전문의인 남민 은평병원장도 “부정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됐다면 자기 나름의 문제 해결 방식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정부청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침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행위가 반복되면서 기술적으로 진화해 이게 가능했다. 계속 속이다보니 속이는 일 자체가 직업이 된 경우”라고 지적했다.

개인의 성격 결함과 사회적 환경이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나쁜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교수는 “경제가 어렵고 취업난이 심해 젊은이들이 막막한 감정을 느낀다. 합법적 노력이 어렵다 보니 불법적인 행동까지 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