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청사에 침입해 공무원 시험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생 송모(26)씨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때도 부정행위로 고득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에선 허리 협착증 진단서를 위조해 결석 처리를 피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송씨가 2011, 2012학년도 수능시험에 각각 응시하면서 허위 약시(교정시력 0.16) 진단서로 과목당 1.5배의 시험 시간을 보장받았다고 14일 밝혔다. 진단서는 2010년 8월 27일 한 대학병원에서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의사를 속여 받은 것이었다. 전날 같은 병원 시력 검사에서 거짓말을 하고도 약시 판정을 못 받자 다음날 다시 찾아가 수능시험 얘기를 하며 의사에게 사정했다고 한다.
뜻대로 저시력 특별대상자로 지정된 송씨는 광주의 한 특수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과 시험을 봤다. 2010년 11월 11일 치러진 2011학년도 수능시험 때는 일반 수험생 대상 시험시간을 기준으로 매교시 직후 답안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점을 이용했다. 저시력자 대상 시험은 아직 진행 중이라 외부와 연락하거나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커닝이 가능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듬해 11월 치러진 2012학년도 시험부터는 전체 시험 종료 후 한꺼번에 정답을 공개하고 있다.
2011학년도 수능시험 당시 송씨는 매교시 볼일이 급하다며 나간 뒤 남자화장실 휴지통 뒤에 미리 숨겨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정답을 엿봤다. 대부분 외우고 일부는 쪽지에 적은 뒤 시험장에 돌아와 답안지에 기입했다. 정답을 확인할 수 없었던 1교시 언어영역만 5등급을 받고 수리·외국어·탐구 등 나머지 영역은 모두 1등급에 들었다. 송씨는 “더 좋은 대학에 가려고 그랬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성적으로 서울권 명문대학들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언어영역 등급이 크게 낮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송씨는 현재 졸업 예정인 제주도 A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경찰은 송씨가 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도 부정행위를 했는지 조사했지만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송씨는 지난해 1월 24일과 2월 7일 각각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토익시험을 치를 때도 같은 약시 진단서를 내고 1.2배의 시험시간을 얻었다. 토익시험 때는 이 진단서가 오래됐다는 이유로 반려되자 발급 날짜를 2010년 8월 27일에서 2015년 2월 8일로 고쳐 제출했다. 컴퓨터로 진단서 원본을 스캔해 이미지 파일로 만든 뒤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날짜를 바꿨다. 수사 관계자는 “아주 감쪽같이 잘했더라”고 전했다. 송씨에게는 사문조 위조·행사 혐의가 추가됐다.
송씨는 A대학 3학년이던 지난해 출석일수를 채우려고 척추관 협착증 진단서를 위조해 6차례 제출한 사실도 경찰 수사로 새롭게 드러났다. 진단서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내려고 개인병원에서 받은 것이었다. 실제 치료를 받은 기록은 있다고 한다. 송씨는 이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면서 발급 날짜를 최근으로 수정하고 내용을 더 중증인 것처럼 추가했다. 그 덕에 4개 과목을 십수 차례 결석하고도 출석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경찰은 한국사·토익 성적과 함께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시험 응시 요건인 상위 10%의 학과 성적도 조작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했지만 이 역시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송씨는 ‘족보’(주요 기출문제 모음집)까지 만들어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다고 주장했다. 교수가 내준 과제를 충실히 제출한 사실은 확인됐다. 허위 진단서로 인정받은 출석일수를 결석으로 다시 반영하더라도 성적이 크게 달라질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교수나 같은 과 학생들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송씨 가족 중에는 공무원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의 아버지도 정년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공무원이다. 송씨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 합격자 명단 조작에 성공하기 전날인 지난달 3월 25일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됐지만 범행과는 무관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공무원 부모 아래에서 크면서 공무원밖에 생각 안 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당연히 공무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송씨의 정부 청사 침입과 합격자 명단 조작을 내부조력자가 없는 단독범행으로 최종 결론지었다. 송씨에게 출입증 겸 신분증을 도난당한 정부 청사 공무원 3명은 단순 절도 피해자로 확인됐다.
송씨가 지난 1월 10일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훔쳐 나온 공무원 시험 응시자 선발시험 문제지를 공유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인재 7급 공무원 1차 시험(필기)에 합격한 132명 중 송씨와 통화한 내역이 있는 사람은 3명이었다. 이 중 같은 대학 재학생인 2명은 학교 자체 선발시험에서 합격한 뒤 연락한 사실만 확인됐다. 문제지를 공유했다면 시험을 치르기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았어야 한다. 나머지 1명은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다른 대학 학생으로 단순히 시험 정보를 공유한 것이라고 한다. 경찰은 송씨의 최근 1년치 통화내역을 토대로 조사했지만 필기시험 합격자와의 연관성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수사를 종결하고 송씨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송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현주건조물 침입과 절도, 야간건조물 침입·절도, 공전자 기록 변작,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공문서 부정행사, 사문서 위조·행사로 당초보다 크게 늘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그렇게 공무원이 좋아 보이더냐...수능까지 부정행위로 고득점
입력 2016-04-14 16:55 수정 2016-04-14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