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0억원? 큰돈이지!”… 나이로비의 굴욕에 서러운 눈물 삼키는 대만

입력 2016-04-13 16:09 수정 2016-04-13 17:45
케냐 경찰서 유치장에서 최루탄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대만인들. 대만중앙통신

[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 스토리] 케냐 나이로비의 한 경찰서 유치장입니다. 지난 12일 대만인 15명이 힘겹게 케냐 경찰에 저항합니다.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고 총으로 위협합니다. 최루탄도 쏩니다.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공항으로 끌려가 비행기에 오릅니다.
 비행기에는 이미 22명의 대만 동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 대만으로 간다고 들었지만 차에 태운 사람들은 중국 대사관 직원들이었습니다. 대만 해외 공관원들이 차를 뒤쫓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렇게 케냐에 있던 대만인 37명은 고국이 아닌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지난 8일에도 8명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지금은 베이징 하이뎬구의 한 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케냐에서 강제 송환된 대만인들이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베이징 하이뎬 구치소. 대만중앙통신

 이들은 모두 국제 전화사기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케냐 경찰은 2014년 나이로비 교외에서 한 중국계 남성의 방화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중 다른 혐의를 잡고 관련자들을 체포해 왔습니다. 대만인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일부는 무죄 판결을 받아 추방 명령을 받기도 했고, 최근 새로 체포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만은 케냐와는 외교 관계가 없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만 대표부가 나섰습니다. 현지 법원으로부터 중국 압송을 금지하는 판결도 받아냈지만 소용없습니다. 대만 외교부도 케냐 정부에 항의하고 인권단체와 언론에도 호소했지만 역시 헛수고였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대만은 나라도 아니냐”며 울분을 토합니다. 아들이 케냐에 붙잡혀 있다는 유모씨는 언론에 “정부가 죄 없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 우리는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느냐”고 외칩니다. 마잉주 총통도 “중국이 사전 통보 없이 우리 국민을 강제 연행한 것은 정의에 위배되는 불법 조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케냐에서 체포됐다 중국으로 강제송환 된 한 대만인의 어머니(가운데)가 지난 12일 타이페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대만중앙통신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강조합니다. 루캉 외교부 대변인은 “각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따르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환구시보는 전문가 말을 빌려 “대만의 매체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범죄와 관련된 것이어서 대륙에 항의할 일이 아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범죄와 싸우는 것은 대륙이나 대만 모두의 의무 아니냐”고 훈계합니다.

 중국은 최근 케냐의 재정적자를 메꿔 주기 위해 5억3000만 유로(약 6935억원)의 차관을 제공했습니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케냐는 전통적인 경제지원국이었던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벗어나 중국 의존도가 높여가고 있습니다. 케냐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는 자명합니다. 대만 외교부 천쥔셴 아시아아프리카 국장은 기자회견 중 “케냐에 제재 방법이 없느냐”는 질문에 “케냐 여행 자제를 권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방안도 있다”며 말을 흐립니다. 케냐가 괘씸하긴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대만의 현실입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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