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현장] “도둑놈은 찍으면 안 돼” 80대 할아버지의 당부

입력 2016-04-13 11:00

4·13 총선일 아침 서울 용산구 투표소에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오전 5시40분 한강로 한강초등학교에 마련된 제5투표소에 선글라스를 낀 노신사가 투표소로 들어섰다. 충남 논산에서 별장을 운영한다는 구장근(72)씨는 투표를 하려고 전날 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그는 “투표는 권리니까 원하는 사람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서울에 자식들이 살고 있어 주소지가 서울로 돼 있다는 그는 “빨리 투표하고 내려가야지”라며 줄을 섰다.


○… 투표소가 나뉘면서 투표소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유권자들의 불만도 쏟아졌다. 한강로 제5투표소에는 “한 곳에서 해야지. 그걸 왜 나눠” “왜 갑자기 그걸 바꾸냐” “우린 용산공고래”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원래 한강초등학교에서 투표했으나 유권자가 많아 이번 총선부터 투표소가 재편됐다. 한강대로 14가길을 기준으로 길 건너에 사는 사람은 5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아닌 사람은 용산공업고등학교에 있는 4투표소에서 투표를 해야 한다.

투표도우미는 유권자들이 올 때마다 “한강대로 14길을 기준으로 길 건너서 오셨어요? 아니면 이 앞에서 오셨어요”를 계속 외쳤다. 이윽고 투표 도우미들은 투표소 현관문 앞에 '여기는 한강로동 제5투표소입니다. 40번지 -> 5투표소 (한강초등학교) / 65번지 -> 4투표소 (용산공고)’라고 적힌 화이트 보드를 설치했다.


○… 80대 할아버지는 “내가 찍은 사람이 되어야 할텐디”라고 말하며 투표소를 나섰다. 그는 누구를 찍었냐는 말에 “민주주의를 실현할 사람을 찍었다”면서 “거짓말만 하는 도둑놈들 찍으면 안 돼.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아시겠어요”라고 말했다.


○… 이촌1동 제2투표소(이촌1동주민센터)에서도 투표소를 제대로 찾지 못한 유권자들이 많았다.

투표 사무원 김문희씨는 투표자가 오면 가장 먼저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40대 여성으로 보이는 투표자가 “엘지 자이요”라고 하자 김씨가 “엘지는요. 대우아파트 경로당으로 가셔야합니다”라고 안내했다. 투표자는 놀라는 표정으로 “대우아파트 경로당이요? 저번에는 여기서 했는데…”라며 발길을 돌렸다.

상황실에 따르면 제2투표소는 2만명의 인구가 투표하게 되는 곳이다.

사전 투표했다는 박인경(50)씨는 딸을 데리고 투표소에 왔다. 그는 “딸아이가 대학수업이 있어서 이촌역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투표를 하러 오게 됐다”며 “정당이나 투표를 공개할 순 없지만 가족끼리는 터놓고 투표 대화를 함”고 말했다.


○…첫 투표를 한다는 황태하(21)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오전 7시58분쯤 이촌1동 제2투표소를 찾아왔다. 그는 “언론보도를 보니 우리나라 젊은이들 투표율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나라국민으로 투표를 꼭 해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 8월 미국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제출했다가 투표소를 잘못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검은색 자전거 타고 제1투표소(대우아파트 경로당)로 방향으로 페달을 밟았다.

신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