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홍삼 고작 1%, 넌 홍삼인가 부산물인가

입력 2016-04-13 00:06

“주요성분 홍삼추출물 20%”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시중에 판매된 한국인삼공사의 ‘진스파 홍삼샴푸’의 용기와 포장박스에는 이러한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홍삼추출물 가운데 홍삼농축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1%였다. 인삼공사가 내부적으로 ‘골드베이스’라 부르는 증삼농축액이 99%를 차지했다. 증삼농축액이란 수삼을 홍삼으로 만들기 위해 증기로 찔 때 배출되는 부산물이었다.

수삼 찔 때 생긴 부산물, 홍삼추출물로 볼 수 있나

2013년 2월 대전지검은 이 샴푸의 용기에 적힌 문구가 소비자를 기만·오인시킬 우려가 있다고 보고 골드베이스 제조자 박모(53)씨를 화장품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홍삼 제조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인 증삼은 홍삼과 분명히 구별된다고 봤다. 증삼농축액에서는 홍삼 특유의 혈행 개선, 기억력 개선, 항산화 효능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홍삼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 1%인 혼합물 전체를 ‘홍삼추출물’로 표기할 수는 없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었다. 검찰은 ‘홍삼추출물’이라 적혀 있으면 보통의 소비자들은 홍삼에서 나온 물질로만 여길 것이고, 부산물의 추출물로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실제로 인삼공사 외 홍삼 제품을 제조하는 여타 기업들 가운데에는 증삼을 폐기물로 취급하는 곳도 있었다. 인삼공사의 마케팅실 직원이 상품 출시를 앞두고 “증삼농축액 99%에 홍삼농축액 1%를 혼합한 물질을 그대로 표기하지 말고, 홍삼추출물이라 표기하라”고 박씨에게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농축액’ 아닌 ‘추출물’ 표기… 소비자 기만 아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홍삼추출물’ ‘증삼농축액’ 등에서 검찰과 다른 판단을 제시했다. 검찰은 홍삼추출물을 “완성된 홍삼을 원료로 유효성분을 추출한 물질”이라 정의했지만, 재판부는 2012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박씨가 운영하는 협력업체에 보낸 답변 등을 근거로 “무엇을 홍삼추출물로 표현할지 화장품법상 규정이 없다”고 했다.

검찰이 부산물로 간주한 증삼농축액에 대해서는 “홍삼의 기능성분인 Rg1, Rb1 및 Rg3 등이 지표성분 함량 기준을 만족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소비자들이 ‘홍삼추출물 20%’라는 표기를 크게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추출물’과 ‘농축액’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1심과 2심은 “‘홍삼농축액’ 제품은 상대적으로 고가에, ‘홍삼추출액’ 제품은 상대적으로 저가에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상고, 공은 대법원에

정작 이 홍삼샴푸는 5년 전 판매량 부진으로 단종됐지만, ‘홍삼추출물 20%’ 문구의 진실성 공방은 대법원으로 넘어와 계속되고 있다. 홍삼추출물의 개념 규정부터 동의하지 못한 대전지검은 상고를 선택했다. 대법원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지난 9일부터 검찰 상고이유 등 법리검토를 시작했다.

대법원은 그간 허위·과장·비방광고 등의 쟁점에서 눈에 띄는 판례를 다수 내놓았다. “플라스틱 용기, 찜찜하셨어요? 이제 글라스락으로 바꾸세요”라고 광고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던 삼광글라스는 지난달 시정명령과 과징금납부명령을 취소 받았다.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를 은근히 비방했다는 시각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유해 수준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해도 경쟁 제품의 위험을 언급하는 광고를 함부로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