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주범격인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측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닉 내지 폐기, 조작한 정황들이 속속 검찰에 포착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방향도 가습기 사망사건 원인 규명에서 옥시 측의 부도덕한 범행 전모를 파헤치는 쪽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2011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조사에 나서자 옥시 경영진이 치밀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옥시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된 수백 건의 내부회의 자료와 보고서, 이메일 등을 확보했다. 여기에는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별 대응방안과 반박 전략 등을 수립하기 위한 비공개 논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옥시가 내부 회의를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선별하고, 불리한 증거를 없애는 일을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옥시의 행각 때문에 수사 방향이 바뀔 정도”라도 말했다.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폐 손상 유해성 인과 관계를 인정한 정부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자체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실험결과를 바꾸려한 정황도 나왔다. 옥시는 2012년쯤 국내 유력 시험기관에 의뢰한 연구의 중간결과가 ‘폐 손상과 살균제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나오자 연구를 사실상 중단시키고 연구결과를 수령하지 않았다. 이 기관은 동물실험을 통해 이런 결과를 냈다고 한다. 검찰은 옥시 측이 이후 해당 시험기관이 옥시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뒷거래’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옥시는 결국 자신들에게 불리한 실험결과를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다. 대신 자사 제품과 폐 손상 발병에 인과 관계가 없다는 내용의 서울대와 호서대의 실험 보고서를 제출했다.
옥시의 홈페이지 고객 상담게시판 게시글 가운데 ‘가습기 살균제’ 관련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이 무더기로 삭제된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옥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서버를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복원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측이 의도적으로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다면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될 여지도 있다. 검찰은 해당 글들이 수년 전부터 올라온 만큼 일정 시간이 지나 자동적으로 글이 삭제됐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이에 대해 옥시 측은 “검찰 수사 중인 사안으로 본 건에 대해선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220여명에 대한 조사를 사실상 마치고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제조·판매사 관계자 소환에 착수한다. 옥시 측 30여명을 포함해 50명 이상이 수사 대상이다.
노용택 황인호 기자 nyt@kmib.co.kr
숨기고 삭제하고 조작하고… 드러나는 옥시의 민낯
입력 2016-04-12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