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 “연기 잘하는 게 뭘까요? 잘하고 싶은데” [인터뷰]

입력 2016-04-11 11:10
김지훈 기자

배우 한효주(29)의 최대 강점? 독보적인 분위기일 테다. 맑고 순한 얼굴에 처연함이 서려있다. 청순가련의 전형, 그간 선보인 역할 대부분이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에서는 좀 새로운 모습이다. 1940년대 마지막 기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그는 최고의 예인 소율 역을 맡았다.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찬 소녀의 순수함부터 사랑과 우정에 배신당한 여인의 광기까지 모두 표현해냈다. 특히 후반부 얼굴은 본인에게조차 낯선 것이었다고.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효주는 “소율의 감정 변화 간극을 더 크게 주고자 했다”며 “초반 밝고 순수한 모습이 극대화돼야 후반부 변해가는 과정에 설득력이 생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소율이 이성적이거나 성숙했다면 그렇게 휙휙 변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너무나 순수한 마음이었기에 그랬던 거죠. 자신의 행동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고 그냥 운명에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의 지배적인 정서인 ‘질투’에 대해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때로는 본인도 느낄 때가 있다고 했다. 가령 연기 잘하는 배우를 봤을 때라든지. 다만 “그런 감정이 들면 시작점에 아예 잘라버린다”는 점이 소율과 달랐다.

“남과 비교하면서 질투하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나를 괴롭게 하는 감정을 계속 갖고 있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빨리 포기하고 좋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는 편이에요.”


소율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던 건 그 시대 예인의 삶을 재현하는 일이었다. 한효주는 극 중 정가와 가요, 한국무용까지 직접 소화했다. 촬영 수개월 전부터 피땀 흘려 배우고 연습한 결과였다.

“지난 한 해를 거의 ‘올인’하다시피 쏟아 부었어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어요(웃음).”

한효주는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본질은 굉장히 비슷한 것 같다”며 “자신의 재주를 얼마나 치열하게 갈고 닦는지에 대해 많은 공감을 했다”고 털어놨다.

‘예술가’ 수식어는 아직 부담스럽지만 그가 ‘연기자’로서 추구하는 본질은 확고했다. “연기 잘하는 거요. 그게 뭔지 찾아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저 사람 연기 참 잘한다’고 인정하는, 그게 대체 뭘까. 언젠가는 정말 (연기) 잘하고 싶어요.”

경력 13년차 배우로서 심히 겸손한 발언이 아닌가. 캐물었더니 그는 좀 더 깊은 얘기를 꺼냈다. 한효주는 “배우는 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직업”이라며 “나를 통해 그들이 실존 인물처럼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캐릭터를 잘 담을 수 있는 깨끗하고 넓은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제 몸을 통해서 잘 나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비움과 채움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캐릭터를 채우는 것만큼이나 비우는 과정도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야 다음 걸 또 잘 담을 수 있으니까.”

소율을 비워낸 그의 다음 행보는 이미 결정됐다. 오는 7월 첫 방송되는 MBC 새 수목드라마 ‘더블유(W)’에서 이종석과 호흡을 맞춘다. ‘동이’(2010) 이후 6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다. 한효주는 “떨린다.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며 웃었다.

어느새 충무로 대표 여배우로 자리잡은 그다. 여배우 영화 품귀 현상을 빚는 와중에도 한효주는 매번 작품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부담이 많이 된다”고 입을 뗐다.

“이제 단순히 연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촬영을 할 때도 단지 내 것만 보면 안 될 거 같고. 책임감이 생기는 과정인 것 같아요. 한 작품에는 막대한 제작비와 시간, 그리고 많은 사람의 열정이 들어가잖아요.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리고 그가 남긴 한 마디. “여자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한효주는 “얼마 전에 ‘룸’이라는 영화를 봤다”며 “한국이라면 과연 그런 영화에 투자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여자와 아이 둘만 나오는데…. (투자가 되긴)아마 힘들 것 같거든요. 여배우로서는 그런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지금까지의 가녀린 이미지는 허상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조근조근 내뱉는 한효주의 말에는 강단이 있었다.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작품만 주어진다면 다들 정말 열심히 할 걸요? 보여줄 수 있는 장이 있다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아직 만나보지 못한 그의 다른 얼굴이 한층 기대되는 순간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