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작가 강운의 구름 같은 인생 이야기 ‘PLAY: PRAY’ 사비나미술관 5월6일까지 개인전

입력 2016-04-10 17:20
공기와 꿈 181.8x259cm 캔버스에 염색한지위에 한지 2015 (200호1)
공기와 꿈 181.8x259cm 캔버스에 염색한지위에 한지 2015 (200호3)
공기와 꿈 181.8x259cm 캔버스에 염색한지위에 한지 2015 (200호4)
물 위를 긋다 35x23cm 종이위에 담채 2016 (붉은점1)
사비나미술관 전시장. 사비나미술관 제공
구름을 그리는 강운(50) 작가의 이름에는 구름 운(雲)자가 있다. 그는 1966년 광주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첫 아이가 나오고 나서 출산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둘째 아이가 40분 늦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는 별 성(星)자가 들어간 형의 이름만 지어두고 있었다. 어머니가 태몽에 나온 구름을 떠올려 동생은 외자로 운(雲)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작가에게 작품이 중요하지 이름에 대해 말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나와 구름을 그리는 작가가 됐으니 이 또한 운명이 아니겠는가. 구름 작가 강운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5월 6일까지 개인전 ‘PLAY: PRAY’를 연다. 한지를 오려 겹겹이 붙인 ‘공기와 꿈’ 16점과 화선지에 물을 번지게 한 ‘물 위를 긋다’ 43점을 선보인다.

무엇이 ‘PLAY’(놀기)이고, 또 어떤 것이 ‘PRAY’(기도)인가. 서울에서 4년여 만에 갖는 개인전에는 두 가지 시리즈 작품이 관람객을 손짓한다. 작가는 구름 작가로 이름을 얻기까지 유화 구름 작업을 해왔다. 2006년부터 한지를 콜라주 형식으로 붙여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실 이전 작품이나 이번에 선보이는 두 가지 작품이나 ‘구름’이라는 주제는 같다.

어느 표구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배접(褙接)의 흔적에 그는 그동안 쌓았던 유화 구름 작가의 명성을 뒤로 하고 한지 구름 작업에 빠져들었다. ‘PRAY’로 분류되는 ‘공기와 꿈’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염색한 한지를 붙이고 가장 얇은 한지를 마름모꼴로 잘게 자른 후 가는 붓으로 찍어 붙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으로 탄생된 작품이다.

한지를 일일이 하나씩 붙여나간 작품은 무한세계로 나아가는 거대한 구름 하늘이 됐다. 뭉게구름, 새털구름, 양떼구름이 뭉쳤다 풀어지고 날아간다. 작가는 지난한 작업에 대해 “수행과 기도의 과정을 통해 일상의 고뇌를 덜어내고 나아가 자연을 끌어안으려 했다”고 설명한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넘나드는 푸른 하늘의 생생한 결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PLAY’로 규정되는 ‘물 위를 긋다’ 작업은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기, 작가의 신체리듬에 이르기까지 외부 환경에 민감한 반응을 통해 예기치 못한 찰나적 순간을 담아내기 때문에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한 번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일획’을 스~윽 그음으로써 빅뱅처럼 번져가는 스며듦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작품이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빛 드로잉이 상큼하다.

작가는 구름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상 사이의 추상적이고 찰나적인 순간을 표현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 바람과 공기의 변화와 현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다. 삶과 자연의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업이다. 그는 “구름은 관찰한 것이 아니라 관찰된 정보의 재구성이다. 금세 사라져 버리는 자연 현상을 가시적인 기호들로 묶어서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3년간 도를 닦듯 작업과 싸움하며 지냈다. 추상이니 구상이니 개념에 빠지지 않고 매 순간을 중요시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물과 종이와 긋는 행위를 했다. 날씨와 몸 컨디션에 의해 다양한 작업이 나왔다.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는 한지를 겹쳐나가는 작업을 해왔다. 두 가지 작업은 상반되지만 유사하고, 예술의 본질을 알 수 있게 하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했다.

구름은 대기 중의 수증기 응결에 의해 생기는 작은 물방울이다. 하지만 때로는 흐르는 세월을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운 이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의 ‘공기와 꿈’은 시시각각 변하며 흘러가는 구름을 그렸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먹은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광주비엔날레, 도쿄 모리미술관 초대전, 체코 프라하비엔날레 등에서 주목 받은 작가에게 구름은 무슨 의미일까. “청년기에 마주한 구름이 마음에 품은 꿈과 방랑이었다면, 장년기의 구름은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고백과 겸손이지요. 마음의 화음이 변함으로써 구름이라는 화성이 달라진 셈입니다.”

작가는 매일 아침 아크릴판 위에 화선지를 올려놓고 단번에 선을 그어 번짐과 스며듦을 반복한다.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형상은 천차만별의 생명이자 세상(구름)을 이루는 물방울 입자의 다양한 표정이다. 작가의 육체와 정신, 환경이 만들어낸 놀이이자 그림일기라고나 할까. 틀에 얽매이기 싫고 매 순간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인생철학을 구름과 물방울이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02-736-4371).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