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배운 사장님이…” 현대가 3세 정일선의 ‘갑질 매뉴얼’

입력 2016-04-08 17:03 수정 2016-04-08 22:36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5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오후 정 전 명예회장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일선(46)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갑질 매뉴얼’ 논란을 공식 사과했다. 정일선 사장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인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대표의 장남이다. 아나운서 노현정의 남편인 동생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대표의 형이기도 하다.

정일선 사장은 8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그는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다”며 “관계된 분들을 찾아 뵙고 사과를 드리겠다”는 뜻을 덧붙였다.

노컷뉴스는 정일선 사장의 수행기사 ‘갑질 매뉴얼’을 8일 보도했다. 정일선 사장은 A4 100장이 넘는 매뉴얼을 만들어 수행기사들에게 서슴없이 폭언과 폭행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수행기사 A씨는 “야 X끼야”라는 호칭으로 불려야 했다. A씨는 매뉴얼을 지키지 못하면 정일선 사장으로부터 “누가 니 맘대로 하래? X신 같은 X끼야, 니 머리가 좋은 줄 아냐? 머리가 안 되면 물어봐” 같은 모욕을 들으며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일선 사장이 권투를 해서 맞으면 정말 아프다”며 “조인트 까이고 많이 맞을 때는 주먹으로 2~30대씩 머리를 연속으로 맞았다”고도 말했다. 

또 다른 수행기사 B씨는 “약속 장소에 늦으면 ‘니가 뭔데 왜 내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나를 기다리게 하느냐’는 욕을 먹어야 했다”며 “챙길 게 워낙 많다 보니 운동갈 때 양말 등을 하나씩 빠뜨리면 정강이를 발로 맞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맞아야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매뉴얼에는 “모닝콜을 받을 때까지 악착같이 해야한다” “모닝콜 뒤 가자라는 문자가 오면 번개같이 뛰어 올라가 신문을 깔고 서류가방은 2개의 포켓 주머니가 정면을 향하게 둬야한다” “ 출발 30분 전부터 빌라 내 현관 옆 기둥 뒤에서 대기한다” “운동복 세탁물은 1시간 내 배달하지 못할 경우 운행가능 기사가 이동 후 초벌세탁 실시해야한다” 등이 담겼다. “운동이 끝날 때쯤 지정된 위치에서 대기하다 배트민턴 채 주면 받아서 잽싸게 나른다” 등의 운동 관련 메뉴얼만도 30장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5주기를 하루 앞둔 20일 오후 정 전 명예회장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매뉴얼을 못 지킨 기사들은 경위서를 써야했다. 또 벌점을 매겨 감봉을 했다. 충전이 끝난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 선에서 분리하지 않거나 사장님 방을 나오면서 불을 끄지 않고 나오거나 두부를 사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이유에서다. 

수행기사 C씨는 “사장의 심기를 건드리면 퇴근하는 기사를 잡아두고 두세 시간 동안 계속 새벽이 될 때까지 서 있게 한다”며 “정 사장 본인이 늦게 나와놓고는 ‘너 왜 나한테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말 안 했어. 5분 늦을 때마다 한 대씩’이라며 윽박질렀다”고 얘기했다.

현대비앤지스틸 측은 “기사가 장소를 잘못 가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걸로 알고 사과를 했다”며 “매뉴얼은 수행기사의 업무 적응을 위해 총무 담당자가 만든 것으로 감봉 조치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정일선 사장 사과문 전문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오늘, 저의 운전기사와 관련하여 보도된 내용으로 인하여 물의를 일으켜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저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 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가까운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했어야 함에도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습니다. 겸허하게 성찰하고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관계된 분들을 찾아 뵙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또한, 많은 질책과 비판을 소중하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심기일전하여, 저 자신 한층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소중한 가르침으로 여기겠습니다.

특히, 제 개인적인 문제로 주주와 고객사, 회사 임직원들에게 큰 부담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제 자신의 부족하고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 말씀 올립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