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스토리] 지난 14일은 칼 마르크스의 133번째 기일이었습니다. 영국 런던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중국인 20명이 카를 마르크스 무덤 앞에 섰습니다. 한 줄로 서서 묵념, 그리고 마르크스의 삶과 중국에 미친 영향에 대한 즉석 강의가 이어집니다. 작은 행사는 ‘만국의 노동자’를 단결하게 만들었던 ‘인터내셔널가’로 마무리됩니다.
이들은 멀리 베이징에서 날아온 단체 여행객들입니다. 9일짜리 여행 코스에는 ‘공산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의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5년간 살았던 딘스트리트 28번지, ‘자본론’을 집필한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홍색(紅色)관광 상품입니다. 공산혁명과 연관된 곳을 찾는 여행으로 중국에서 시작해 해외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해외 홍색관광 전문인 싱훠(星火)여행사 홈페이지를 보면 다양한 상품들이 보입니다. 런던을 비롯해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과 여름휴가지가 있던 룩셈부르크, ‘파리 꼬뮌’의 파리 등을 둘러보는 서유럽 5개국 코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항일전쟁시기 인민해방군에 참여했던 의사이자 공산주의자 노먼 베순의 고향 캐나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중국 조선의용군의 흔적을 더듬는 북한 여행 상품도 있습니다. 몇 안남은 동료 사회주의 국가 쿠바도 빠뜨릴 수 없죠.
중국이 홍색관광을 장려하기 시작한 건 2004년부터였습니다. 홍색관광이라는 말도 이 때 만들어졌습니다. 10여년동안 관광지 정비 등을 위해 쏟아 부은 돈만 90억 위안(약 1조60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홍색관광객은 매년 평균 16% 넘게 성장해왔지만 부침도 있었습니다.
바로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보시라이는 충칭에서 마오쩌둥 혁명정신을 배우자는 ‘홍색문화 운동’을 펼칩니다. 그의 낙마와 함께 ‘홍색’이라는 말은 쓰기가 힘들어집니다. 당시 여행사들은 ‘건강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습니다. 2012년과 2013년의 일입니다. 2014년 국무원이 해외 홍색 관광을 허용하는 등 홍색 관광 활성화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2월 시진핑 주석도 혁명성지 중 한곳인 산시성 옌안을 방문해 중요한 지시를 합니다. “홍색관광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확한 방향을 준비해야 한다. 핵심은 홍색 교육을 진행하고 홍색 유전자를 전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 간부와 군중들이 이곳에 와서 홍색 정신의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중국 최고 지도자까지 밀어주고 있으니 홍색 관광은 중국 관광객 유커(遊客)들의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수혜국은 러시아입니다. 지난해 러시아를 찾은 유커는 100만명을 넘었고 쓴 돈만 10억 달러(1조1500억원)에 이릅니다. 지난해 6월 러시아와 중국 관광당국은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성 샤오산에서 양국의 홍색관광 코스 개발에 합의했습니다. 기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외에 블라디미르 레닌의 고향 울리야노프스크와 레닌이 공부했던 카잔 등이 새로운 코스로 포함됐습니다.
러시아는 유커 모시기에 정성을 쏟습니다. 러시아 언론 스푸트니크에 따르면 울리야노프스크 정부는 유커를 위해 호텔과 중국식 슈퍼마켓, 중의학 병원이 모여있는 ‘중국 파크’를 짓습니다. 모스크바도 1928년 중국 공산당 6차 당대회가 열렸던 유서 깊은 장소에 박물관을 세울 계획입니다. 또 모스크바에서 300㎞ 떨어진 이바노프 국제소년학교 건물도 유커에게 개방됩니다. 이 곳은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 등 국제 공산혁명가 자녀들의 기숙학교로 유명했습니다.
사실 중국이 해외 홍색관광을 장려하는 것은 중국의 홍색 관광지로 외국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사전 작업입니다. 환구시보는 중국 관광 당국의 다음 목표는 ‘홍색관광의 세계화’라고 전합니다. 최근 관련 용역을 맡은 난카이대 리중 교수는 “외국 여행객들을 위한 중국 홍색관광지 개발하고 국제적 수준에 맞게 발전시키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 중국으로서는 갈 길이 멉니다. 대표적 홍색관광지 샤오산만 봐도 그렇습니다. 공식 통계상 지난해 샤오산 관광객은 1682만명이지만 이중 외국인은 16만명으로 1%에도 못미칩니다.
미국 경제전문 포브스는 지난 1월 중국 홍색 관광객들이 러시아와 세계 각지로 더욱 몰려갈 것이라면서 미국도 준비해야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포브스는 미국의 홍색 관광지가 될 만한 곳으로 5월1일 노동자의 날이 유래된 시카고 등을 추천합니다. 한국에는 홍색관광지가 될만한 곳이 어디 없나요?
맹경환 베이징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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