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랑으로 악동에서 스타로 진화하는 수아레스

입력 2016-04-07 15:43 수정 2016-04-07 19:18
사진=AP뉴시스

15살짜리 청소년팀 축구선수는 청소부였다. 우루과이의 시골도시 살토에서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 일곱 형제자매 중 넷째였던 그는 아홉이라는 나이에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변변한 직장도 없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것이다. 굶주림에 지쳐, 가정불화에 지쳐, 그는 소년시절부터 집밖을 전전했다. 방황 속에서도 밥벌이는 해야 했다. 길거리 청소부로 푼돈을 벌던 그는 축구를 잘했다. 수도 몬테비데오의 명문팀 나시오날이 그를 유스팀에 입단시켰을 정도다.

그러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툭하면 훈련을 빠지고 노는 데 열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가를 빗자루로 쓸고 있을 때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12살이던 소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소년은 그날로 방황을 걷어치웠다. 축구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했다. 중산층이던 소녀의 부모는 부랑아와 다름없던 그를 집으로 데려가 한동안 같이 살며 돌봐줬다.

소년은 유스팀 경기에서 골을 넣는데 온 힘을 다했다. 한 골을 넣으면 감독에게 달려가 돈을 달라고 했고, 감독은 동전 몇 푼을 쥐어줬다. 소년은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곧장 달려가 소녀를 만났다.

소녀를 사랑한 소년은 ‘다시는 처참했던 옛날로, 불행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축구에 목숨을 걸어야 새로운 삶이 열릴 것만 같았다. 직사각형 잔디 그라운드에 서면 평범한 몸집의 소년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투사로 돌변했다.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것 같았어요. 거친 플레이에 골을 넣어 이기는 것 빼고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질 않았죠. 우린 그를 강도라고 불렀어요.” 나시오날 유스팀 감독 리카르도 페르모도는 소년을 그렇게 기억했다.

루이스 수아레스(29),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 공격수의 이야기다. 부자가 된 지금도 그라운드에 서면 야수로 변모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소속일 때는 경기 중 상대의 귀를 물어뜯을 정도였다.

우루과이에서 프로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수아레스는 2003년 ‘운명의 연인’ 소피아 발비(26)와 그녀의 가족들이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자 크게 낙담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온통 소피아를 다시 만날 생각밖엔 없었다. 3년 뒤 그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흐로닝언으로 이적한다. 소피아가 있는 유럽으로 무조건 가야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소피아에게 달려가 흐로닝언으로 데려갔고, 2009년 웨딩마치를 올렸다.

15살 소년과 12살 소녀의 첫 사랑은 결국 이뤄졌다. 수아레스는 이때부터 날개를 단 듯 유럽 축구무대를 평정했다. 흐로닝언에서 리버풀로, 리버풀에서 다시 세계 최고의 팀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그라운드의 야수는 집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부드러운 아빠이자 아내만을 사랑하는 최고의 순정 남편이다. 딸 델피나(6)와 아들 벤하민(3)에게 수아레스는 천사로 통한다.

‘두 얼굴의 사나이.’ 수아레스는 요즘 바르셀로나팀의 가장 뜨거운 사나이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골, 프리메라리가 29경기 26골로 각각 득점 2위다.

수아레스의 승부욕은 악명이 자자할 정도다. 형 파울로는 “동생처럼 지독하게 승리를 갈망하는 선수를 이제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내 소피아는 남편이 그라운드에서 사고를 칠 때마다 옐로카드를 꺼냈다. “이미지를 개선하라”는 아내의 조언을 들은 수아레스는 이제 많이 변했다. 누구를 물지도 않고, 예전처럼 비신사적 반칙을 하지도 않는다. 경기장 안에서는 용감무쌍한 투사, 경기장 밖에서는 가정적인 남자. 이것이 수아레스의 두 얼굴이다.

소피아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장에서 뛰는 루이스와 집에서의 루이스는 완전 다른 사람입니다. 집에 오면 축구를 잊어버린 듯해요”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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