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 문화예술계의 ‘르네상스맨’으로 불리던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사진) 선생이 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2세.
박 선생은 일제 식민 지배와 6.25 동란을 겪은 한국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 음악, 무용 평론가로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또한 극작과 연출, 뮤지컬 제작 등에서도 전천후 활동을 펼쳤다.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를 거쳐 1934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니혼대학교에서 미학, 니혼고등음악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또 무용가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로부터 잠시 무용을 배웠으며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도쿄에서 음악 전문 잡지 ‘음악평론' 기자를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평론을 쓴 그는 광복 직후 음악교과서 ‘임시중등음악교본’을 펴낸 데 이어 1948년 국내 최초 음악평론집인 ‘음악과 현실’을 내놨다. 1960년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를 연출하는가 하면 1962년 창단한 예그린악단의 고문위원이기도 했다. 예그린악단은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으로 그는 단장도 지냈다. 1966년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인 ‘살짜기 옵서예'의 제작을 맡아 공전의 히트를 친 그는 ‘꽃님아 꽃님아' ‘바다여 말하라' 등을 잇따라 제작하며 창작뮤지컬의 씨앗을 뿌렸다.
게다가 그는 1966년 건축가 김수근과 함께 건축 잡지 ‘공간'(현재 스페이스)의 창간을 이끌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전위적인 공연의 본거지인 소극장 ‘공간 사랑'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수많은 음악 평론집을 냈던 그는 공연 대본 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88서울올림픽 개·폐막식 대본을 썼으며 현대무용가 안은미 무용단의 베스트셀러 '심포카 바리',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등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2011년 100년의 근대 예술사를 망라한 구술서 ‘박용구-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를 내놓는가 하면 2013년 100수를 맞아 신작 ‘먼동이 틀 무렵'을 출간하는 등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다.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UNICEF 한국문화예술인클럽 회장, 초대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 딸 화경, 아들 동철 등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장지는 경기 양주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지(02-2258-5940).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20세기 한국 문화예술계의 르네상스맨, 평론가 박용구 선생 타계
입력 2016-04-07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