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둘째를 가르치고 둘째가 셋째를 가르칩니다. 셋째가 넷째를 가르치고 넷째는 또 다섯째를 가르치죠. 이렇게 아이들은 릴레이 교육을 해왔습니다. 5평짜리 방에서 9식구가 북적북적 살았죠. 옛날 옛적 이야기 같지만 2016년 현재, 광주에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생활고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부부의 자녀들은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이렇습니다. 광주에 사는 조모(46)씨 부부는 1990년 첫 아이를 출산한 뒤 2살 터울로 10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조씨는 1998년 식당을 개업했다가 실패해 빚만 잔뜩 지게됐죠. 채권자들 때문에 도피생활을 하게 된 조씨는 결국 주민등록이 말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씨 부부는 그해 남자 아이를 출산합니다. 이 아이는 다섯째입니다. 그 뒤로 줄줄이 5명을 더 낳습니다.
이에 대해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유년시절 외롭게 자라 아이들을 많이 낳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씨의 주민등록이 말소되면서 다섯째부터 여덟째까지 무려 4명은 출생 신고 조차 못하다 지난해 겨우 하게 됐죠.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집에서 장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현재 26세인 맏딸은 중학교를 중퇴한 뒤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이수하게 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장녀가 동생들에게 학습지를 시켜 글자와 셈을 가르쳤다”고 전했습니다.
성년이 된 맏이는 독립했습니다. 둘째와 셋째도 맏이를 따라 자립했죠. 큰 딸은 친구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용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들인 둘째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용 기술을 배운 셋째 딸은 미용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들 자매는 미용실을 차려 생계를 꾸리겠다는 계획 있습니다.
아버지인 조씨는 건강 문제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폐와 피부 질환으로 취업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대신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며 나머지 7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타지로 나간 세 아이들도 생활비를 송금해 생활에 보탬을 주고 있다고 하는데요. 현재 월세 25만원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9명의 가족이 북적북적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 이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조씨네 사건을 맡으면서 의심했던 아동학대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동네 주민들도 조씨네 아이들이 착하고 예의 바르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도 남달라 어른을 보면 배꼽인사를 꼬박꼬박 한다고 경찰은 전했죠.
아홉째와 막내는 현재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일곱째와 여덟째는 관계 당국의 지원을 받아 지난 5일부터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넷째도 미용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관련 직종에 취업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조씨네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인터넷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죠. “형편도 어려운데 아이들을 왜 그렇게 많이 낳았냐” “무책임한 부모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냐” 등의 비판적 시선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물질만능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진정한 애국자다” “지금은 힘들어도 아이들이 크면 보람되겠다” 등의 긍정의 반응도 있었습니다.
최근 엽기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처음 학교를 가지 않은 10남매가 있다는 사실에 색안경을 끼고 봤었는데요. 학대가 아니라는 것 만으로도 참 다행입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