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장편소설 ‘홀’ 낸 편혜영 인터뷰
올해 마흔 넷이 된 편혜영의 신작 장편 ‘홀’(The Hole·문학과지성사)은 40대 부부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2005) 이후 ‘잔혹 서사’가 브랜드가 됐던 작가도 40대 중반 고개를 넘어가니 보통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싶다.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만났다. 웃을 때의 눈 주변 주름이 자연스러운 나이가 된 작가가 말했다.
“등단한지 15년이 됐어요. 세계관이나 정서가 등단 초기와 동일하다고 해도 소재를 취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지요. 옛날은 환상적이고 날것의 이미지에 취했다면 이제는 현실적인 배경의 인물을 찾게 되는군요.”
40대는 어떤 나이일까. 작가는 허연 시인의 싯귀를 빌어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고 정의 내렸다. 소설 속에서도 쓴 문장인데, 주인공인 40대 대학교수 오기가 그렇다.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아내는 죽고 자신은 반신불수가 된 오기는 이제 의지할 데라곤 혼자가 된 장모밖에 없다. 다행스럽게 장모는 오기의 간병을 자처한다. 그러나 딸 부부의 여행이 마지막 이별여행이었고, 사위에게 딸로부터 오해를 살만한 불륜이 있었다는 사실을 딸이 남긴 기록을 통해 장모는 알게 된다. 이제는 태도가 표변해 점점 사위를 폭력적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연못을 만든다며 마당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는데….
40대는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나이다. 오기는 성공했고 아내는 실패했다. 오기는 미래의 불안을 이겨내고 부단히, 때로는 약삭빠르게 행동해 교수 자리를 거머쥐었다. 아내는 어느 하나 이루지 못했다. 느는 것은 조롱과 비아냥뿐이었다. 그런 아내에 대해 오기는 “화가나 작가, 저술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단지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오기가 장모에게 당하는 끔찍한 상황은 속물적으로 살아온 오기의 삶에 대한 죽은 아내의 보복처럼 읽힌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오기가 오해를 받는 부분도 있거든요. 40대는 자신이 이룬 성취와 안정에 취해 주변을 잊게 되는 나이지요. 그러나 자기가 돌아보고 싶지 않아도 삶을 돌아봐야 할 순간이 있고, 사고를 통해 그렇게 된 인물을 통해 독자가 그럴 필요성에 공감했으면 합니다.”
교통사고가 없었다면 타인의 삶의 성공의 척도만 재던 오기는 사실 이런 생각을 못할 것이다. 자신을 점점 한쪽으로 몰아넣는 장모에 의해 결국 그 구덩이에 빠진 오기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기가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208쪽)
구덩이에 빠진 오기는 어떻게 됐을까. 장모는 오해를 풀게 될까. 그런 애매함이 주는 긴장감이 소설의 전편에 흐른다. 상복이 많은 작가로, 이효석문학상(2009), 동인문학상(2012), 이상문학상(2012), 현대문학상(2015) 등을 받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편혜영 "40대는 죄지어가는 나이... 성공으로 타인 재단"
입력 2016-04-06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