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자료 첫 희생양 아이슬란드 총리, 사임 발표, 각국 지도자 위기

입력 2016-04-06 08:28
아이슬란드 총리의 사임 소식을 전한 영국 BBC방송.

각국 지도자와 유명인사의 조세회피 자료가 담긴 ‘파나마 페이퍼스’가 폭로된 뒤 전 세계에서 후폭풍이 거세다.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자료에서 거론된 각국 지도자들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때문에 연루 인사들은 일제히 “불법은 없다”고 반박했고,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보도통제가 이뤄졌다.

첫 희생양은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다. 영국령 조세도피처 버진아일랜드에 수백만 달러를 은닉한 혐의를 받아 온 그는 이번 의혹과 관련해 사임을 밝혔다고 시그두르 잉기 요한손 아이슬란드 농업장관이 5일 밝혔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요한손 장관은 이날 아이슬란드 RUV 방송에 귄뢰이그손 총리가 연정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앞서 전날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수천명이 그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야당은 불신임투표 진행 방침을 천명했다. 인터넷에서는 전체 인구의 7%에 해당하는 2만4000명이 사퇴요구 서명에 참가했다.

역외계좌가 드러난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야당의 탄핵 요구가 거세지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무 잘못한 게 없다”고 호소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나와즈 샤리프 총리의 세 자녀가 해외에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난 뒤 야당이 “총리 일가가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측근을 통해 검은돈을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도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디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9월 총선을 앞두고 러시아 지도자를 흠집 내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중국 언론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매형과 리펑 전 총리 딸, 자칭린 전 상무위원의 손녀가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라는 제목이 달린 글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퍼졌으나 곧바로 삭제됐다.

조세회피 의혹에 휩싸인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의 가족은 성명을 내고 “아들의 잘못은 없으며 내용을 보도한 언론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영국계 은행이 조세도피범의 돈세탁 창구로 활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국을 향한 비난도 쏟아졌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자금 세탁에 연루된 금융기관을 분석하면 영국계가 홍콩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며 “영국이 슈퍼리치들의 조세회피 네트워크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파나마는 ‘돈세탁 천국’이라는 비난에 휩싸이자 후안 카를로스 파나마 바렐라 대통령이 나서 “파나마 금융업계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에 무관용 법칙을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세회피를 도운 법률회사인 모색 폰세카는 파나마 출신 라몬 폰세카(63)와 독일 출신 유르겐 모색(67)이 세운 회사로, 이들은 전용헬기·요트·금괴를 보유하는 등 초호화 생활을 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폰세카는 부도덕한 공직자가 권력을 바탕으로 추악한 욕망을 달성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미스터 폴리티쿠스’라는 소설을 쓰는 등 작가로 활동하면서 부패 정치인의 돈세탁을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