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 악역 한효주? 여자만 아는 그 미묘함 [리뷰]

입력 2016-04-06 00:21 수정 2016-04-06 02:19

영화 ‘해어화’가 언론에 처음 공개된 날, 상영 이후 간담회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남기자가 주연배우 한효주에게 “처음 악역을 맡게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한참 뒤 마이크를 잡은 한 여기자는 “나라도 소율(극중 한효주 이름)이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고 했다. 흠, 뭔가 해석이 갈린다.

여자들 사이 오가는 감정 교류를 얼마만큼 캐치했는지에 따른 차이다. 소율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랐던 듯하다. 화려한 볼거리 이면에 흐르는 인물의 심리가 이 영화의 묘미다. 소율은 정말 악한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의 선택은 과연 정당했을까?

배경은 일제치하의 1940년대 경성이다. 주인공 소율은 어릴 적부터 뛰어난 소리꾼이었다. 최고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에서 늘 1등을 도맡아했다.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가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열등감 따위는 느낄 새조차 없었다.

소율에겐 둘도 없는 소꿉친구가 있다. 빚쟁이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팔려온 연희(천우희)다. 둘은 취향까지 비슷했다. 정가를 부르면서도 유행가 듣는 걸 좋아했다. 당대 최고 가수 이난영(차지연)을 동경해 함께 공연장에 놀러가기도 했다.


소율의 정인 윤우(유연석)가 등장하면서 본격 전개가 펼쳐진다. 유명 작곡가인 윤우의 소개로 이난영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소율은 곧바로 연희를 떠올렸고, 기쁜 마음으로 연희와 이난영의 만남을 주선했다.

여기서부터 뭔가 꼬였다. 연희의 노래를 들은 이난영이 크게 감명한 것이다. 이난영이 공식석상에서 연희 실력을 극찬했을 때, 소율은 생전 처음 열패감을 맛봐야 했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윤우는 연희를 가수로 키우겠다고 나섰다. 설상가상이다. 소율이 그토록 부르고 싶어 했던 윤우의 곡이 연희 차지가 돼버렸다. “왜 내가 아니냐”며 울부짖는 소율에게 윤우는 “연희의 목소리가 필요할 뿐 내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물론 부질없는 말이었다.

연희와 윤우는 어느새 사랑에 빠졌다. 둘이 입맞춤하는 광경을 목격한 소율은 충격에 휩싸였다. 처음 마음을 주고 함께 미래를 꿈꾼 사람이 윤우였다. 질투심을 억누르던 소율은 결국 복수를 결심했다. 무모했지만, 즉흥적이진 않았다. 차곡차곡 쌓인 감정이 그 선택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영화는 소율의 감정선에 집중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지면서 홀로 갈등하는 심정까지 촘촘하게 그렸다. 윤우와 연희의 내면 설명은 비교적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빈틈을 메운 건 온전히 배우들 몫이었다.

한효주가 특히 돋보인다. 미세한 눈썹 움직임만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얘기했다. 소율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분명 한효주의 힘이었다. 맡은 바의 120%를 해낸 천우희도 애를 썼다. 쉽지 않았을 과정과 그 속의 고민이 배우들 연기에 묻어난다.

신나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막바지 당혹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한효주의 노인 분장은 글쎄…. 확실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는 박흥식 감독의 말은 십분 이해하나, 과유불급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모든 걸 배우 입으로 구구절절 전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초반 곳곳에 복선이 담긴 대사가 나온다. “사내를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 산월(장영남)의 대사도 그렇고. 여성 관객이 공감할 지점이 많다. 눈과 귀는 120분 내내 즐거울 거다. 오는 13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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