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야구 농구 보러가느라 바쁘실 테니 빨리 이야기 하겠습니다” 나름 유머를 섞었지만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중요한 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가 먹먹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을 문장이지만, 말소리에 이어 나온 환호성도 예전만 못했다. 유세장으로 쓰인 밀워키 극장 객석은 절반이 텅텅 비었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유세 현장에서 흔치 않은 굴욕을 당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경선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트럼프가 무시(snub) 당했다고 전했다. 좀처럼 유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내 멜리나 트럼프가 함께 했지만 머쓱하게 준비된 연설만 읽고 자리를 내려갔다.
반면 겨우 26㎞ 가량 떨어진 맞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워키쇼 엑스포센터 유세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이 유세에는 한 때 경선에서 맞섰던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최고경영자(CEO)가 자리해 분위기를 북돋았다.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의 소개로 유세장 무대에 올라선 크루즈는 “미국 전역이 위스콘신을 지켜보고 있다”며 자신을 선택해줄 것을 밀워키주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트럼프가 5일 위스콘신주 프라이머리를 이길 경우 후보가 되기 위한 선거인단 과반 확보 7부 능선을 넘게 되지만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난달 30일 내뱉은 낙태 발언 파문이 진화되지 않은 탓이다. 트럼프는 당시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낙태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 궁지에 몰렸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낙태한 여성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성명을 내고 “처벌받아야 하는 건 (불법 낙태를) 시술한 의사”라며 수습에 나섰으나 이미 분위기는 기울었다.
그 직전까지도 트럼프는 잇따라 자충수를 뒀다. 선거캠프에서 성추행 파문이 일어난 데 이어 지난달 24일 트위터에 크루즈의 부인 하이디 크루즈와 자신의 부인의 외모를 비교한 사진을 올려 논란을 자초했다.
승자독식제인 위스콘신주 경선에서 대의원 42명을 통째로 내줄 경우 트럼프는 자력 과반 확보가 힘들다. 대의원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경우 중재전당대회에서 지명될 가능성이 낮은 트럼프는 사실상 후보 선출이 좌절된다. 낙태 발언이 있었던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실시된 에머슨대 위스콘신주 설문조사에서 트럼프는 40%를 기록한 크루즈 의원에 5% 포인트 뒤진 35%에 그쳤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