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이 열렸던 1999년 10월 29일 서울 잠실구장. 한화가 4대 3으로 앞선 9회말 2사 2루에서 롯데 타자 박현승(44)이 때린 타구는 2루수 앞으로 굴렀다.
롯데의 마지막 공격이 된 내야 땅볼. 그라운드와 더그아웃에 있던 한화 선수들은 일제히 마운드로 달려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한화가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로 우승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마운드엔 구대성(49)이 있었다.
구대성은 한화가 빙그레 이글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한국시리즈를 정복한 1999년 마지막 공을 던진 투수다. 한화의 영원한 에이스, 투혼의 상징, 지금은 영광의 기억으로 남은 ‘전설’과 같은 존재다. 한화 팬들은 17년 지난 지금까지 구대성이 마지막 공을 던진 순간을 잊지 않았다.
구대성은 5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한화의 홈구장 개막전에서 시구자로 마운드를 밟았다. 경기 시작을 3시간쯤 앞두고 팬들에게 알린 깜짝 시구였다. 구대성이 외야에서 걸어 나와 마운드에 서자 팬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구대성은 익숙한 투구 자세로 왼손에 쥔 공을 가볍게 던져 포수 미트로 정확하게 꽂았다. 관중들은 구대성의 이름을 새긴 한화 유니폼을 흔들면서 “대성불패”를 연호했다. ‘대성불패’는 구대성이 등판하면 패배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과거 한화 팬들이 외쳤던 응원구호다.
구대성은 1993~2000년, 2006~2010년 한화의 마운드를 책임졌다. 1996년 정규리그에서 다승, 구원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고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했다. 1999년 한국시리즈에선 모든 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3세이브를 기록했다. 1승을 수확한 경기는 우승을 확정했던 마지막 5차전이다.
구대성은 2010년 9월 3일 대전구장에서 열렸던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를 마지막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했다. 50대를 앞둔 나이지만 2010년 입단한 호주 프로야구 시드니 블루삭스에서 현역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구대성은 시구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 “(구속이) 시속 30마일 밑으로 떨어질 때까지 뛰겠다”고 말했다.
구대성의 시구는 후배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한화는 3-5로 뒤진 6회말 집중력을 발휘해 6안타 2볼넷으로 대거 6점을 뽑아 승부를 뒤집고 9대 5로 승리했다. LG 트윈스 원정 개막 2연전에서 전패를 당하고 최하위로 떨어졌지만 홈 개막전 역전승으로 10개 구단 중 가장 늦게 1승을 수확했다.
대전=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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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6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