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경찰서 한복판에서 ‘테러’를 당했다. 지난 4일 경찰관 4명을 상대로 ‘황산 테러’를 일으킨 사람은 민원인 전모(38·여)씨.
전씨는 이날 오전 8시40분쯤 서울 관악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찾아가 “왜 내말을 들어주지 않느냐”며 욕설을 하고 책상을 발로 차는 등 소란을 부리다 복도로 끌려 나왔다. 전씨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 경찰에게 내용물을 뿌렸는데, 보온병 안에 든 것은 황산이었다. 박모(44) 경사는 얼굴과 목에 2도 화상을 입었고 동료 경찰관 3명도 손등과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전씨는 흉기도 가지고 있었지만 경찰에게 빼앗겼다.
피의자나 민원인으로부터 경찰이 공격을 당하는 이른바 ‘경찰 테러’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12년에 중장비 기사 황모(45)씨가 굴착기를 몰고 경남 진주의 한 지구대로 돌진해 굴착기 집게로 순찰차를 부수고 지구대 현관문과 주변 가로등을 훼손했다. 경찰은 실탄을 쏴 황씨를 검거했다. 황씨는 이날 낮에 진주시청에서 “왜 내 차만 주차단속을 하느냐”고 항의하다 청원경찰을 폭행하기도 했다. 그는 주차단속에 불만을 갖고 지구대로 돌진한 것이었다.
사건 처리에 불만을 품고 경찰을 ‘살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A씨(55)가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B경위(28)에게 휘두르다 살인미수 혐의로 검거됐다. 앞서 A씨는 “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을 불러 달라”며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다 즉결심판에 넘겨졌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흉기를 가져온 것이다.
경찰이 경찰 장비를 빼앗겨 거꾸로 피의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지난달 18일 인천에서는 C씨(48)가 음주운전과 폭행 혐의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에 저항하다 경찰의 테이저건을 빼앗아 경찰을 상대로 쏘는 일이 발생했다.
이어지는 ‘경찰 테러’에 현장에 있는 경찰관들은 곤혹스러운 상황. 서울 시내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은 “욕설과 발길질 등 행패는 기본이고 인간적인 모욕감마저 든다”며 “피의자 인권만 있고 경찰은 인권도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경찰관도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려고 하면 인터넷에 올린다거나 민원을 제기하겠다며 경찰을 협박하는 피의자가 많아 법 집행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찰 업무에 불만을 품고 경찰을 공격하는 이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경찰이 ‘기계적 업무처리’에서 벗어나 민원인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법 집행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단순히 결과만 통보하는 게 아니라 처리 과정을 충분히 설명해 납득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방적인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경찰서 건물의 보안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돼있거나 휴대물품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으면 황산 테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서의 보안 시스템 강화를 주문했다. 이상원 서울청장도 4일 기자간담회에서 “(보안 검색 강화에 대해) 본청과 상의해 개선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법을 신뢰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경찰 테러’의 원인으로 풀이된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국민 법의식 실태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사람(50.1%)이 ‘우리 사회에서 법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경찰을 신뢰한다’는 응답(24.9%)보다 ‘신뢰하지 않는다’(36.8%)는 답변이 더 높게 나왔다. 또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은 법을 위반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항목에 응답자의 80% 이상이 동의하는 등 법 집행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법대로 처리되지 않는 것을 간접 경험한 시민들이 법과 공권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법대로 하면 손해’라는 인식을 바꾸려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주먹에 맞고 황산에 맞고 살해 위협 당해도… 경찰은 웁니다
입력 2016-04-05 17:31 수정 2016-04-06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