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189㎝, 몸무게 75㎏, ‘롱다리’에 훤칠한 얼굴…. 1급 남성 모델을 방불케 하는 이 프로필의 주인공은 한국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구단 주전 1루수 구자욱(23)의 것이다.
데뷔 첫 해였던 지난해 야구를 모르는 젊은 여성들까지 ‘오빠부대’를 만들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구자욱의 진정한 가치는 야구를 할 때 빛을 뿜는다.
그를 놓고 야구 전문가들은 “한국 야구에선 보기 드문 5툴(Five-Tool) 플레이어”라고 평한다. 야구 선수로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타자로서는 장타를 칠 수 있는 파워와 타격 정확도, 그리고 주자로서는 빠른 발과 주루 감각, 수비수로는 강한 어깨와 송구 능력을 다 갖췄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5툴 플레이어는 엄청난 연봉을 받으며 구단의 핵심선수 대접을 받는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34), 로스엔젤레스 앤젤스의 마이크 트라웃(25)가 대표적이다. 한 시즌 20홈런-20도루-100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선수가 바로 5툴 플레이어다. 힘으로 타격하기보다 정확한 타격자세와 기술, 헤드스피드로 총알같은 ‘라이너’성 타구를 만들어낸다.
프로구단들은 5툴 플레이어를 1루수로 출장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빨래줄 송구로 상대 주자를 잡아내는 코너 외야수가 제 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자욱은 거의 매일 벌어지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1루수로 출전한다. 보통 1루수는 9명의 야수 중 가장 수비가 약하거나, 주력이 떨어지는 선수의 포지션을 여겨진다. 일명 ‘거포’로 불리는 장거리 타자들의 경우 육중한 몸에 발이 느리기 마련이다. 몸이 민첩하지 못하니 수비가 약할 수 밖에 없다. 1루수에 장타자들이 포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기준으로보면 구자욱은 결코 전형적인 1루수가 아니다. 아니 ‘신개념’ ‘하이브리드(변종)’ 1루수라고 하는 게 맞다.
구자욱은 2012년 2차 신인드래프트 전체 12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2군에서 활약했다. 상무 제대 후 지난 시즌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타율 0.349 11홈런 57타점 17도루라는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김하성(넥센)과 경쟁 끝에 신인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2루타 33개, 3루타 5개 등으로 날렵한 몸매와는 다르게 장타력을 뽐냈다. 23경기 연속안타로 기복 없는 타격능력도 선보였다. 수비에선 내외야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공백이 생길 때마다 그 자리를 메웠다.
구자욱은 비시즌 동안에는 부족한 점으로 지적됐던 파워를 보강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붙박이 1번 타자 겸 1루수로 낙점됐다. 득점 기회를 만드는 리드오프 역할을 해야 한다.
구자욱은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 2연전 동안 타율 0.444(9타수 4안타) 2타점 2도루로 다재다능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3안타 쇼를 펼친 2일 두산전에선 1회와 6회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의 펜스 좌우 상단을 차례로 맞추며 2루타를 2개나 뽑아냈다. 6회 2루에 안착한 구자욱은 빠른 발로 3루를 훔쳤다. 5-5 동점으로 맞선 8회 초 2사 1,2루 수비 때는 결정적인 호수비를 선보였다. 구자욱은 두산 허경민의 파울 타구를 잡기 위해 더그아웃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삼성은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고 8회 말 대량 득점에 성공하며 개막 첫 승리를 챙겼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공수에서 MVP였다”며 구자욱을 수훈선수로 꼽았다.
흔히 프로 스포츠에서는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있다. 신인들이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낸 뒤 거짓말처럼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는 현상을 뜻한다. 아직까지 구자욱에게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전 1루수 자리를 꿰차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듯 보인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5툴 플레이어가 1루수…‘신개념 퍼스트베이스맨’ 구자욱
입력 2016-04-05 1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