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禪詩)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사진(寫眞)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부산 기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작가 김홍희가 범어사 주지이자 안국선원을 설립한 수불 스님을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범어사 경내의 일상은 물론이고 중국 미국 인도 등 수불 스님의 해외포교 여행에 함께하면서 대화하고 촬영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우환 화백으로부터 시작됐다. 작가는 이 화백의 인물화를 찍어왔다. 대구 이우환 미술관 건립이 무산되자 이 화백이 “머리나 식힐 겸 범어사에 가자”며 발걸음을 옮겼고 따라나선 작가는 그곳에서 수불 스님을 소개받았다.
작가는 “많은 선사들은 상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데 수불 스님은 그런 관행에서 자유롭다. 셔터가 열리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에너지를 쏟아낸다”고 했다. 수불 스님은 “형상이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형상”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종교는 다르지만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은 4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선류(禪流)’란 제목의 사진전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사진 속 주인공 수불 스님은 출품작 52점에 선시를 썼다. 삶의 철학과 깨달음을 담은 글들이다.
2008년 니콘 선정 세계의 사진가 20인, 2000년 한국 이미지 메이커 500인, 2000년 문예진흥원 한국의 예술선 등에 선정되고, 기장군 인터넷 미술관 관장, 네이버 포토갤러리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한 작가는 “즐겁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는 ‘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에서 “손가락 끝으로 생각하기, 시간의 흔적을 자르다, 들숨에 생명 있고 날숨에 죽음 있다, 글이 없었다면 시인은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결정적으로 담아내다, 사진가는 죽어서 사진을 남긴다, 관심은 이해를 부르고 이해는 사랑을 낳는다, 사진의 왕도는 원칙이다, 사람이든 사진이든 노출이 문제다, 카메라는 깡통이다”라고 썼다.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것들을 카메라로 지그시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마음으로 수불 스님을 찍었다. 삶의 원점을 묻는 대중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결국 사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불태워질 것이다. 사진은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수불 스님 사진도 그렇게 나왔다.
전시는 ‘경내’ ‘포트레이트(Portrait)’ ‘불교행사’ ‘예술’ ‘포교활동’ ‘신자와 함께’ 등 6개 주제로 나뉜다. 지난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백남준 특별전'을 열어 화제를 모으는 등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면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아이리스 문은 “시(詩), 서(書), 사진 등 52점이 함께해 한국의 정신문화 유산인 선류를 종합적으로 전한다”고 설명했다.
전시회와 함께 출간된 494페이지에 달하는 대형 사진집은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일어, 중국어 등으로도 번역됐다. 전시 제목 ‘선류’란 절대적 진리인 ‘선’을 형상화하고 문화화하는 것으로 진리의 형상 구현을 뜻한다(02-736-1020).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크리스천 사진작가 김홍희가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을 찍은 까닭은? 4월11일까지 인사아트센터 ‘선류’전
입력 2016-04-05 12:23 수정 2016-04-05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