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소중함 절실히 깨달은 연극 '보도지침'을 이제 용서해주길

입력 2016-04-04 17:55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 엘에스컴퍼니 제공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 ‘보도지침’(3월 26일~6월 19일 수현재씨어터)은 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의 언론통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제작 단계부터 주목을 모았다. 오세혁이 쓰고 변정주가 연출한 이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 당시 언론계에서 자행되던 상황을 법정극으로 풀어냈고, 배우 이명행과 송용진 등의 열연이 더해져 몰입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작사인 엘에스엠컴퍼니 이성모 대표가 인터뷰에서 20~30대 여성 관객을 비하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 대표는 작품을 제작한 계기에 대해 “2014년 여름이었다. 당시 공연계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침체되어 있었고, 공연계 전반적인 분위기가 20~30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저가의 가벼운 공연들이 넘쳐날 때였다. 그런 상황을 탈피해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수 있는 공연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보도지침’의 홍보 브로슈어에 실렸다.

이와 관련 한국 연극계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30대 여성 관객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 대표는 논란이 일자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보도지침’은 처음 예매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높은 예매율을 자랑했지만 논란 이후 수백 장의 티켓 예약 취소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평점 테러를 당했다.

사실 제작사 관계자들의 관객 비하로 인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뮤지컬 ‘쓰릴 미'의 연출가가 트위터 상에서 지인과의 대화 도중 ‘회전문 관객’으로 불리는 열성 관객을 비하한 것이 알려져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뮤지컬 ‘라카지’, 2013년 ‘두 도시 이야기’, 2014년 ‘지킬 앤 하이드’ 등 여러 작품에서 일어났다. 최근엔 프랑스 뮤지컬 ‘아마데우스’ 내한공연에 출연중인 배우 로랑 방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칭챙총’을 사용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자 사과하기도 했다. 이들 작품은 ‘보도지침’과 마찬가지로 티켓 판매에 크든작든 타격을 입었다.

공연계에서 잇따른 관객 비하 논란은 기본적으로 제작진의 태도에 책임이 있다. 제작진이 한국 공연계를 지탱하고 있는 고마운 관객들을 무시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옳지 않다. 게다가 공연을 많이 보는 일부 마니아 관객의 식견은 전문가 못지 않다.

물론 작품을 즐기는 것을 넘어 스태프들을 비방하거나 제작사를 좌지우지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관객도 소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공연이든 관객 없이 결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제작진은 잊어서는 안된다.

덧붙여 20~30대 여성 관객들도 이제 그만 ‘보도지침’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용서해 주면 어떨가. ‘보도지침’은 객석을 비운 채로 가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그리고 ‘보도지침’을 비롯해 공연계 제작진은 이번에 관객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확실히 얻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