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에 약물파동, 부상 악령까지… 최지만 잡아준 추신수의 한마디

입력 2016-04-04 16:31 수정 2016-04-07 16:22
정확하게 1년 전, 미국 애리조나의 한 병원 병상에 누운 동양인 청년은 TV를 켠 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생중계되는 화면 때문이었다. 오른쪽 다리에는 두꺼운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도 야구선수였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시범경기 첫 경기에 출전했다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빅리그 진출은커녕 제대로 달리고 걸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최지만(25). 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뒤 그는 오로지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만 꿔왔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연습과 경기를 이어가며 언제 될지도 모르는 메이저리그 승격만 쳐다봤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차가운 햄버거로 삼시세끼를 해결했고, 컵라면을 부셔먹던 시절이었다. 광활한 미국땅을 하루 10시간 이상씩 버스로 이동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그래도 청운의 꿈이 있었기에 다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지탱하게 해줬던 희망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최지만에게는 항상 불행이 따라다녔다. 인천 동산고의 대형 포수로 2010년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미국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중 가장 아래인 루키리그부터 시작했고, 데뷔 첫 해 타격왕과 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촉망받는 유망주로 떠올랐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포수가 될 것이라는 꿈도 잠시. 그는 이듬해 허리 수술로 1년을 통째로 허비했다. 포수 마스크도 벗어야 했다. 주자와 잘못해 충돌하면 선수생활까지 끝날 것이라는 진단 때문이었다. 그 때 그 수술로 최지만은 지금도 잠잘 때 똑바로 눕지 못하고 새우잠을 잔다.

2014년 4월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50경기 출장 정지 징계라는 청천벽력을 맞았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어준 이가 바로 추신수(34·텍사스 레인저스)였다. 추신수는 “말로 하지 말고 실력으로 보여줘라. 그게 사회고 프로다. 결국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결국 최지만은 LA 에인절스로 옮긴 올해 시범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25인 로스터에 포함됐다. 꿈에도 그리던 빅리거가 된 것이다. 2005년 추신수 이후 11년 만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마이너리그 출신 한국선수다.

지난 3일 클럽하우스에서 팀 수석코치로부터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진입 통보를 받았지만,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이 경기를 끝으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다른 동료들이 때문이었다. 그는 한 칼럼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조용히 클럽하우스를 빠져 나왔고, 숙소에 도착해서야 가족과 통화하며 기쁨을 만끽했다”고 했다.

최지만에게는 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마이너리그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는 한국 선수들에게 희망이 되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미국 대륙 어느 한 켠에선 이학주(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문찬종(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많은 한국 선수가 서러운 마이너리그 생활을 한다. 최지만은 “팬들의 관심과 손길 하나가 마이너 선수들에게는 무척 힘이된다”며 “마이너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둬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