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의 비극...구상나무, 분비나무 등 침엽수 '집단고사'

입력 2016-04-04 12:00
지리산 노고단 구상나무 집단 고사. 녹색연합 제공
설악산 대청봉 분비나무 집단 고사. 녹색연합 제공
울진산림보호구역 소나무 집단고사. 녹색연합 제공
한반도 육지 침엽수의 집단 고사(枯死)가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종인 ‘구상나무’도 급격하게 집단 고사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줄어든 강수량, 특히 겨울철 강설량 감소가 원인으로 꼽힌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4월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1년 동안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등 국내 산림생태계 핵심지역을 조사한 결과 구상나무, 분비나무, 소나무 등 대표적인 한반도 침엽수들이 집단 고사중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4일 밝혔다. 육지 침엽수의 집단 고사의 심각성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2~3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집단 고사하기 시작한 지리산국립공원 구상나무다. 녹색연합은 구상나무가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 전반에 걸쳐 해발 1900~1400m 안팎 높이에서 집단 고사하고 있는 점을 확인했다.

구상나무는 한국특산종인 아고산대 지표종으로 전 세계에 집단 서식지가 지리산, 한라산밖에 없는 국내 자생수종이라 국제적으로 보호가치가 매우 높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멸종 위기 적색 리스트 멸종위기종이기도 하다.

녹색연합은 지리산에서 죽은 구상나무들이 줄기와 가지만 남은 채 잎은 다 떨어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처음 고사가 시작되면 줄기의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주로 검은 색깔을 띤다. 약 1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가지 끝이 완전히 사라지고 줄기와 굵은 가지가 해골처럼 허옇게 변한 ‘고사목’이 된다.

녹색연합은 노고단부터 돼지령-임걸령-반야봉-토끼봉-연하봉 등지 곳곳에서 이런 고사목군락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서부지역 주능선 국립공원 천연림 사이에 회색빛이나 검은 빛깔을 나타나내는 고사목들이 즐비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집단서식지인 한라산에서는 집단고사가 5년 전부터 본격화된 상황이다. 구상나무가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것은 곧 세계적인 ‘멸종’을 의미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백두대간 고산침엽수의 쇠퇴는 기후변화가 한반도에도 도래했다는 증거”라며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반야봉 1600m 위쪽 구상나무가 대부분 고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침엽수는 육지 생물 중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종으로 사계절 수분과 영양이 공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10년 동안 겨울철 적설량이나 강우량이 줄어들면서 건조가 심해진 것을 집단 고사의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에서는 지난해 주봉인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에서 분비나무의 집단고사가 확인됐다. 설악산은 남한에서 분비나무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이다. 녹색연합은 2013년부터 분비나무 고사가 시작돼 소청대피소 주변 분비나무가 전멸하다시피 했다고 분석했다. 서 전문위원은 “향후 10년 안에 주요 집단서식지는 상당 부분 사라지고 소규모 개체만 남는 생태적 고립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인 경북 울진·삼척 일대에서는 금강소나무가 고사해 국립산림과학원이 기후변화로 인한 고사에 무게를 실어 모니터링과 원인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연합은 “주요 국립공원 고산침엽수 식생지도를 작성해 집단 고사와 고사목에 대한 정밀한 실태파악을 진행하고 강우량, 적설량, 풍향, 풍속 등의 국지적인 기상데이터 확보를 위한 현지 산악기상망을 주요 능선과 봉우리 등의 거점에 설치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