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 35. 놀이정신으로 무장한 고선웅 연출 ‘한국인의 초상’

입력 2016-04-04 10:32
지난해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을 들고 한국연극의 정점에 선 연출가 고선웅이 올해 시동을 건 첫 작품으로 ‘한국인의 초상(肖像)’(국립극단·연출 고선웅·3월12일~28일)을 올렸다. 배우들은 놀이정신으로 무장하고 날것과 즉흥성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하면서 피로한 한국사회에 얼룩진 그림자들을 불러내고 희망으로 지워낸다. 놀이의 속도로 전진하면서 27개의 한국사회 무거운 그림자들을 장면으로 이음새를 만들고 놀이로 통로로 연결해 누적된 피로사회를 희망으로 연결한다. 배우들은 놀이정신으로 무장하고 한판 신나게 놀면서 고선웅 특유의 정갈함으로 그려지는 ‘한국인의 초상’은 따끈하다. 배우들의 열기는 뛰고, 걷고, 구르고, 흩어지고, 모이면서 자가발전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한국사회에 그려진 민낯의 얼굴에 날 것의 전력을 공급해 희망 온도에 불 밝히기를 시도한다.

고선웅은 요즘 ‘헬 조선’으로 비유되는 냉소적 시선으로 조롱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오염된 키워드를 들고 (고령화 사회, 스마트폰 세대와 K세대, 성형사회, 미혼모와 입양, 피로사회, 권태, 중년의 성적 욕망, 묻지 마 범죄, 맞벌이, 기러기세대, 카카오 톡, 교통대란, 청소년, 입시, 희망 직업 ‘연예인’, 대리기사, 청소년 흡연, 취업, 실직, 빈곤, 불균형 등) 한국사회의 성장 속도 이면에 멈춰져 있는 제로 화된 ‘희망지수’, ‘행복지수’에 온도를 투영하고 전력을 공급한다. 결혼은 사치가 됐고, 살만한 집 장만은 치솟는 집값으로 적금 붇고 미래행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교과서가 됐다. 아이를 한 명만 낳더라도 넘치는 사교육비로 삶의 행복 지수는 불투명해진다. 교육현실은 대학사회 진입을 위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학생들은 시험으로 허덕거린다. 성공사회로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주류대학 벨트를 허리에 채워주어야 한다. 벨트를 둘러도 경쟁은 끝이 없고, 성공 확률은 자신할 수 없다. 취업의 문턱을 넘고 면접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성형을 권장하는 사회다.

아이 미래를 위한 투자도 행복한 결말이 될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정년퇴임 후 노후의 삶도 불투명해 진다. 가족의 공동체 행복은 흩어져야 행복하고, 막장의 끝판을 달리는 비정한 부모는 늘어난다. 공동화 보다는 개인화가 익숙하다. 온돌방 문화의 가족애는 요양원으로 장전되고, 대리기사들은 ‘콜’ 경쟁으로 이동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교통비 절약을 위안 삼는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정치의 온도는 상승 전류가 흐르질 않는다. 아이는 베이비 박스로 옮겨지고 해외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늘어난다. 미혼모들을 위한 사회적 장치는 미약하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하루 5000원 정도 벌려고 허리를 피고 하늘을 볼 수 없다. 걷고, 골목을 누비고 리어카를 끌면서 하루를 탑승할 뿐이다. 스마트 폰과 카카오톡으로 살아가는 질감은 달라졌지만 인간 내면의 향기는 전송되질 못한다. 연예인은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지만 화려함 이면에 들어나지 않는 고단한 현실은 화려함으로만 포장된다.

‘한국인의 초상’의 무대는 철저하게 개방적이고 열린 무대다. 고선웅 연출은 한국사회에 피로 화된 현상들을 들고 배우들의 날것과 즉흥적 놀이로 장면에 이음새를 만들고 속도를 낸다. 배우들은 걷고, 뛰고, 흩어지고 모이면서 놀이의 속도전으로 투영되는 현실사회의 민낯을 그려낸다. 무대는 배우들이 잘 놀 수 있도록 각 장면으로 활용 될 오브제들로 널려져 있고, 배우들은 오브제들을 담고 버리고 재활용하면서 장면에 활력을 넣는다. 헬 조선으로 비유되는 냉소적이고 조롱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오염된 키워드를 들고 성장 속도 이면에 멈추어 있는 행복 침몰지수에 희망온도를 투영해 ‘버티고, 함께하고, 힘을 내면 아직은 희망을 같고 살만한 사회’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고대 동굴벽화는 시대의 문화와 삶의 현상을 들어낸다. 고대인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려 삶을 기록하고 흔적을 남겼다. 고선웅 연출은 무대 오른쪽 중앙으로 긴 벽판을 세워 마치 고대벽화를 연상케 하는 재치와 발랄함으로 형광펜을 들고 한국사회의 누적된 피로현상을 상형 이미지들을 채워 넣는다. 한국사회에 박제되어 있는 누적된 피로현상의 민낯들을 형광펜으로 빛을 발산 시키며 마치 주술을 걸 듯 희망의 온도로 용해시킨다. 배우들은 형용색색의 무대복장에 무지갯빛을 부착하고 희망을 빛을 발산한다. 무대 양 객석 쪽으로 배치한 거울에 손 글씨로 투영된 한국사회는 무지개 같은 희망사회 건설하기다.

미래 세대들이 바라보는 사회는 헬 조선의 사회다. 성공을 위한 취업 스팩 만들기는 유통기한이 없어졌고, 취업은 고단한 전투다. 지하철과 버스에 탑승하는 서민들은 하루일과를 자기 주술로 최면을 걸며 내면에 부적(符籍)을 부착한다. 희망과 행복을 가슴으로 새겨 넣으며 ‘오늘은 다를 거야’, ‘내일은 희망이 있겠지’를 외치며 미래 행복해 질 수 있는 삶을 위해 달리고, 뛰고, 버틴다. 인형의 오브제는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한국사회 절망의 유산으로 그려지고 피로가 누적된 한국사회의 중년 남성의 절망의 내면은 희화화된 바게트 빵처럼 무기력한 욕망만이 숨을 쉰다. 연출의 노련함은 놀이정신으로 달리면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파편화 돼 있는 한국인의 초상을 덩어리로 연결해 한국사회의 그림자를 형성시킨다. 오브제, 놀이, 옴니버스를 들고 배우들은 신호와 등·퇴장으로 이야기를 연결하고 특정한 장면에서는 반복적으로 등장시켜 피로사회의 한국사회의얼굴을 연결의 흐름을 유지시킨다. 고선웅 연출은 배우들의 날 것에 날을 세운 놀이정신에서 흘러내리는 전류에 희망의 온기를 모으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온도를 응집시킨다. 배우들은 잘 놀면서도 연출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날 것의 에너지는 각 장면으로 생명력에 온도를 높인다.

마지막 장면은 ‘수벽치기’ 장면이다. 배우 정재진이 어수룩한 복장으로 무대에 나선다. 어수룩하게 ‘수벽치기’를 한다. 이어 사람들이 모인다. “뭐 하시는 거예요?”, “응, 수벽치기 다 들 한번 해봐” 한 두 사람씩 모여 소리를 내는 수벽치기에 시민사회의 온도가 모여 희망의 멜로디를 내는 강렬함을 형성시킨다. 미래 희망사회의 ‘해’를 바라보기 위해 연출은 대한민국 희망 플로그에 전선코드를 연결한다.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한번 해 보는 거야. 해 보는 거야!”를 외치고 놀이로 속도를 내면서 햇볕이 강렬하게 들어오는 희망사회를 품는다. ‘해’는 희망의 온도이며, ‘함께 해보자’는 실천의 의지다. 함께, 한국사회로 희망의 전력을 공급했을 때 헬 조선의 조롱과 냉소적인 시선은 희망의 온도로 제로 화 된 행복지수를 끌어 올릴 수 있다. 날 것의 놀이정신으로 전류를 생산해 내고 연출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장 안의 창문을 열고 밖을 연결하며 한국사회의 희망바라보기를 시도한다. 배우들의 놀이정신으로 그려낸 ‘한국인의 초상’은 고선웅 특유의 재치가 놀이정신으로 무장된 무대다. 놀이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즉흥성으로 발산되는 날것의 놀이성이다. 놀이의 속도가 과하면 규칙이 깨지고 이야기는 흐트러질 수 있다. 한국사회 상처의 고름을 치유 할 수 있는 고선웅의 처방전은 희망으로만 햇빛을 받고, 시원하게 짜내지 못한 속은 허하다. 너무 잘 놀아서 그렇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로 대학로 극장을 들고 귀촌한 배우 정재진은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으로 노련하게 놀이를 즐기고, 전수환은 놀면서도 장면의 무게를 잡는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