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넘사벽 원톱’ 안성기가 말하는 한국영화史

입력 2016-04-03 20:27

‘국민배우’ 안성기(64)를 빼놓고 한국영화사를 논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약 60년간 우리 영화계를 지켜온 그는 산증인으로 불린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묵직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안성기는 2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 안성기관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해 일반 관객들과 대담을 나눴다. CGV아트하우스가 진행 중인 마스터피스 특별전 관련 이벤트였다. 절친한 후배 박중훈과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이 함께 자리를 빛냈다.

마스터클래스에 앞서 디지털 복원된 영화 ‘칠수와 만수’(감독 박광수·1988)가 상영됐다. 장기수 아버지를 뒀다는 이유로 번듯한 직업을 갖지 못하는 만수(안성기)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칠수(박중훈)의 모습을 통해 1980년대 사회를 냉철하게 비판한 영화다.

두 주연은 이 영화 촬영 당시 현장을 돌아보며 “정말 열악했다”고 입을 모았다. 음향이나 조명은 고사하고 장소 섭외부터 녹록치 않았단다. 의상이나 분장은 배우가 직접 준비했다. 액션신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맨몸으로 부딪혔다. “영화 찍다가 안 죽을 뻔한 배우가 거의 없었다”는 게 박중훈의 말이다.

칠수와 만수는 두 배우 인연이 시작된 작품이다. 박중훈은 안성기와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됐을 때 “꿈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데뷔 전 안(성기) 선배가 출연한 ‘깊고 푸른 밤’(1985)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며 “그런 배우와 함께 작품을 하다니 영광스러웠다”고 말했다. 이후 둘은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스타’(2006)를 함께했다.


대담 중 박중훈의 폭로가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안 선배가 워낙 겸손하신 분이지만 예전을 회고하면서는 ‘그땐 나 혼자 있었지 뭐’ 그러신다”고 밝혔다. 한데, 이는 실없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1980~1990년대에는 소위 말하는 영화배우가 없었다”며 “대다수 배우들은 TV 쪽에 가있었다”고 설명했다. 군부독재 시대에 칼라TV가 보편화되면서 쏠림 현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안성기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1970년 유신시대를 지내면서 굉장히 영화를 만들기 힘든 환경이 됐다”며 “사전·사후검열이 강화되면서 작품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배우들이 떠났고, 결국 명맥이 유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성기는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한편으로는 확실한 개성과 깊이가 있는 작품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재능있는 영화인들이 많아진 건 물론 영화배우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의 열정은 여전했다. 안성기는 “좋은 작품을 하면 행복하다”면서 “나이에 맞는 역할, 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CGV아트하우스는 ‘한국영화인 헌정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안성기(압구정점)와 임권택 감독(서면점)의 이름을 붙인 헌정관을 지난달 22일 개관했다. 다음달 6일까지 마스터피스 특별전을 열고 이들 대표작 15편을 소개한다. 5~10월 매월 마지막 주 임권택·안성기 Week를 통해선 대표작 23편을 순차 상영할 예정이다.

본인 헌정관이 마련된 데 대해 안성기는 “극장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서로 격려와 용기를 나누는, 턱이 낮은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