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 “거품 인기 빠지면? 또 기다리는 맛으로” [인터뷰]

입력 2016-04-03 15:54 수정 2016-04-03 16:00
쿠키뉴스DB

참 오래 기다렸다. 무려 14년. 순탄치 않은 길이었지만 배우 진구(36)는 흔들림 없이 걸었다. 그 우직함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이름 앞에 이제 ‘대세’ 타이틀이 붙는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지.

진구 연기인생 2막이 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BS 2TV ‘태양의 후예’(태후)가 그 어려운 걸 가능케 했다. 배우와 배역이 딱 들어맞으니 시너지는 폭발했다. 서대영 상사는 ‘진구 맞춤형’ 캐릭터였다. 윤명주(김지원)와의 케미는 덤이었다.

그 인기를 최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진구와의 인터뷰 장소에서다. 서울 종로구 팔판로의 한 카페, 자주 방문하는 곳인데 이날 풍경은 좀 달랐다. 10~20대로 보이는 팬 대여섯 명이 카페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엑소 같은 인기 아이돌에게나 종종 있는 일이다.

진구와 마주앉자마자 이 얘기를 건넸다. “정말이냐”며 놀라던 그는 “(송)중기 온 줄 알고 오셨나 보다”고 농을 던졌다. 14년 만에 있는 일이라 얼떨떨하지만 최대한 무던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요즘? 기분 좋죠. 근데 무덤덤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제가 잘 되고 있다기보다 확실히 드라마가 이슈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은 확실히 좋아하죠. 생전 안하던 말들도 해주고…. 뭐, 원래부터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다든지(웃음).”


그간 진구는 상남자 이미지가 강했다. 선 굵은 연기를 주로 해왔다. 그래서인지 유독 멜로가 적었다. 그 한을 풀 듯 태후에서는 달달한 로맨스를 맘껏 선보이고 있다. 새로운 도전에 본인도 만족하는 듯했다.

“잠깐 잠깐 특별출연했던 거 빼면 멜로가 정말 별로 없었어요. ‘멜로야 휴먼이야?’ 좀 애매한 대본도 있었고요. 이번에 정통 멜로의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요. ‘나도 이 옷을 입을 수 있구나’ 그런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SBS ‘올인’(2003)의 이병헌 아역으로 데뷔한 진구는 이후 부지런히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갔다. 단역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밝았다. 연기력은 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분량에 관계없이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 많았다. 좀 더 주목받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울 만큼.

흥행 면에서는 부진했지만 진구에게 ‘아픈 손가락’은 하나도 없단다. 그는 “제가 한 것만큼의 대가를 받은 것 같다”며 “다행히 폭망한 작품은 없었기에 끊임없이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쟤 쓰면 망해’라는 인식이 붙어버렸다면 아마 전 지금까지 작품을 못했을 거예요. 근데 쭉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름 잘 살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다보니 태후처럼 좋은 반응이 있는 작품도 하게 된 거고요.”


처음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 20대 초 군대에 있을 때였다. 제대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 문득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연기학원에 다니며 올인 오디션에 붙었다. 이 작품으로 슈퍼루키로 떠오르는 듯했는데…. 행복한 꿈에서 깨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인 때 인기가 정말 급하게 식더라고요. 2주 올라갔다가 1주 만에 식었어요(웃음). 그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죠. 그만한 충격은 지금까지 못 받아봤어요. 그때 데인 게 있어서 내공이 생긴 거 같아요. 그래서 요즘처럼 핫한 반응도 반신반의해요. 물론 기분은 좋지만요.”

반짝 인기에 휘둘리지 않을만한 맷집을 키웠다는 얘기다. 진구는 “거품(인기)이라는 거 이미 빠져봤으니 ‘어차피 빠질 거 멋지게 한 번 즐겨보자’는 생각”이라며 “거품 빠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다신 없을 줄 알았던 거품이 또 생긴 거 보니까, 분명 언젠가 다시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거 기다리는 맛으로 (계속 해나가야죠).”

진구는 자신만만했다. 어떤 노하우라도 있는 걸까.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느긋하게 가면 될 것 같다”며 “만약 내려가더라도 다시 올라올 에너지는 충분히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날을 시련이 아닌 발판으로 여긴다는 말로 들렸다.


“저는 늘 제자리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엄청 많이 올라와있더라고요. 그 과정이 힘들었다면 어떻게 더 올라가나 고민이 됐겠죠. 근데 저는 정말 편안하고 느긋하게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살고 싶어요.”

진구는 이미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차기작 ‘원라인’ 촬영에 한창이다. 그는 “서대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며 “연기자 진구를 좋아하시는 분은 환호하겠지만, 서대영을 좋아하신 분에겐 별로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걱정보단 기대가 앞선다. 그의 확고한 작품선정 기준이 주는 믿음 때문이다. “영화는 티켓 값, 드라마는 60분. 제가 그만큼의 값어치를 할 수 있는지 항상 생각해요. 그럼 전 무조건 할 겁니다.” 이 배우, 믿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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