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가 40대에 느닷없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그저 이 한 줄 요약만으로도 ‘불행’이 와닿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40대에 겪는 알츠하이머병은 오로지 불행으로밖에 해석이 안 되는 것일까.
tvN 금토드라마 ‘기억’은 유능한 변호사 박태석(이성민)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뒤 달라지는 삶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부활’ ‘상어’ ‘마왕’ 등을 함께한 박찬홍 PD와 김지우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검증된 감독·작가 콤비에 연기파 배우 이성민과 김지수, 박진희, 이기우 등의 출연으로 ‘웰메이드’가 예고된 작품이었다.
전작 ‘시그널’과 ‘응답하라 1988’의 인기를 이을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기도 했다. 4회 시청률은 2.9%에 머물렀다. 이성민, 김지수, 박진희 등의 연기 호평이 이어졌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못 하고 있다.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고는 있으나 전작들처럼 폭발적인 인기는 아직이다.
‘기억’의 배우들이 경기도 일산 CJ E&M 스튜디오에서 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촬영 현장의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리 연기에 능한 ‘갓성민’이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닥친 불행에 힘겨워하는 박태석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성민은 “저도 대본을 보고 ‘어떻게 하루 안에 이렇게 불행이 다가올까’ 놀라웠다. 2부에서 밝혀진 불행한 이야기들이 모두 하루의 일이었다. 감정씬에 대한 밸런스 조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속물이었던 변호사 박태석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달라진다.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삶의 태도를 바꾼다. 돈과 명예를 위해 법정에 섰던 과거를 잊고 정의와 약자를 위해 싸우게 된다.
이성민은 “박태석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에 대해 누군가 알게 되고, 그러면서 생기는 일들이 있다”며 “앞으로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법정에서 변론을 별치는 모습과 가족과 얽히는 이야기들이 지금보다는 덜 어둡게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성민은 ‘미생’에 이어 ‘기억’에서 열연을 펼치며 ‘갓성민’(신이라는 단어 God과 이성민의 조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 별명을 쑥스러워했다. 이성민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갓은 머리에 쓰는 걸로만 알고 있다”고 농담을 했다. 그는 “크게 동요 될 일은 아니지만 책임감, 신중함은 생긴다. 스트레스도 있지만 그건 감수 해야 하는 거니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수(서영주 역)는 박태석의 아내로, 박진희(나은선 역)는 전처로 나온다. 지금의 아내와 헤어진 아내가 함께 나오는 게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불륜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지수는 “남편의 병을 모르는 상황에서 전처의 집에 가는 남편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실제 나라면 남편의 말을 먼저 들을 것 같다”면서 “그런데 박진희씨는 4부 마지막 장면(박태석이 나은선의 집으로 가는)을 들을 때 ‘무조건 머리채를 잡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진희는 “미혼과 기혼의 차이”라고 했고, 김지수는 “생각의 차이”라며 웃었다.
남편이 현직 판사인 박진희는 “판사역인데 남편이 판사라 오히려 고민이 됐다”며 “남편이 조언을 해주긴 했다”고 했다. 박진희는 “법정 드라마가 많이 있지만 현실과는 또 많이 다르다고 한다. 드라마틱한 변호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데, 드라마에서는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게 있다”며 “현실과 극에서의 간극을 줄이고 현실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요즘 ‘핫한’ 금수저 악역을 맡은 이기우(신영진 역) 는 “부담이 됐지만 나름 연구를 많이 했다”고 했다. 이기우는 “건장한 청년이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표독스러운 아이 같은 모습이 있는 캐릭터”라며 “그런 내면의 모습으로 차별화를 주려고 한다”고 했다.
박지영 tvN 드라마본부 국장은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가 반드시 알아보실 것”이라며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보다 좋은 드라마라는 믿음, 시청자들이 알아보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앞으로 시청자 입장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법정 에피소드도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tvN 제공]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웰메이드 드라마 '기억'…이성민, "지독한 불행 겪지만 카타르시스 선사"
입력 2016-04-01 17:00 수정 2016-04-01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