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정현욱·원종현…병마를 극복하고 우뚝 선 프로야구 선수들

입력 2016-04-01 16:04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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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5일.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29)은 인천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완봉승을 거뒀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김영민은 시속 150㎞에 달하는 묵직한 돌직구가 일품이었다. 하지만 프로에선 제구력에 항상 문제점을 보이며 성장이 더뎠다가 그날 완봉승을 거두며 길고 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이틀 뒤 갑자기 배탈 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들렀다. 그리고 백혈병이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곧바로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이제 정말 좀 던지는가 싶었는데, 야구만이 아니라 생명을 걱정해야할 벼랑 끝에 놓인 것이다.

야구선수라는 천직(天職)을 벗어던져야 했던 김영민은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에 돌입했다. 입원실에 누워 옆을 지키는 만삭의 아내와 세살바기 딸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다. 다행히 백혈병 중에서도 생명 지속 가능성이 높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수술하지 않고 약물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진단 소견을 받았다. 집에서 요양하다 며칠씩 입원해 혈액 투석을 받는 생활을 지속했다.

그는 지난 1월 4개월간의 투병 끝에 넥센의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아직 완치 진단이 나지 않아 병원도 팀도 캠프 합류를 만류했지만, 김영민은 막무가내였다. 야구를 그만두고선 살아갈 자신이 더 없었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땀을 흘렸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는 이름을 바꿨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김세현이라고 개명했다. 둘째 딸도 태어났다. 구단은 그런 그에게 데뷔 10년 만에 억대 연봉을 선물했다.

김영민, 아니 새로 태어난 김세현은 올 시즌 팀의 붙박이 마무리투수 임무를 맡았다. 그는 “아내가 옆을 지켜줘서 너무 고맙다. 이 야구공으로 가족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고 이를 악물었다.

LG 트윈스의 베테랑 불펜 정현욱(38)도 병마를 이겨낸 불굴의 사나이다. 전 소속팀 삼성과 국가대표 시절 전천후 등판으로 ‘국민노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던 그는 2014년 7월 8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위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627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서는 데 성공했다. 아직 직구 최고구속이 141㎞에 그치는 등 예전 같지 않다. 몸무게가 무려 20㎏이나 빠졌지만 결국 이겨냈다. 이제 ‘국민노예’에서 ‘국민희망’이 돼 공을 던진다. 정현욱은 “신인처럼 설레고 긴장된다. 은퇴까지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곁에서 지지해준 가족들과 트레이너들을 위해서라도 잘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NC 다이노스 원종현(29)도 대장암을 극복하고 올 시즌 희망찬 피칭을 선보인다. 그는 2015년 초 스프링캠프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NC는 그 해 그를 등록선수에 포함시키고 수술 등 치료비용과 연봉을 전액 지급했다. 원종현은 시속 155㎞나 되는 강속구가 주무기였다. 동료들은 원종현의 투병을 기억하겠다며 ‘155’라는 숫자를 모자에 새기고 한 시즌을 치렀다. 완치된 그는 올해 팀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며 착실히 몸을 만들었다. 이제 몸 상태가 거의 100%가 됐다. 원종현은 “나를 기다려준 동료와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작년에 못 던진 공을 올해 원 없이 뿌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