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신사’ 추일승 감독이 말한 오리온 농구

입력 2016-04-01 08:33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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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지난달 29일 2015-2016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사령탑 데뷔 후 첫 우승을 일궈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무관의 설움을 벗어던지고 기쁨을 만끽한지 이틀이 지났다. ‘코트의 신사’라는 별명을 가진 추 감독의 목소리에는 여느 때와 같은 차분함이 묻어났다. 추 감독은 올 시즌을 되돌아보면서 사령탑으로서 다음 시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동시에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추 감독이 말하는 올 시즌 오리온 농구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추 감독은 챔프전 우승 뒤 시즌 뒷마무리를 위해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31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시즌 동안 함께 고생한 선수들 휴가도 보내줘야 하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며 운을 뗐다. 추 감독은 “시즌 전 세웠던 계획이나 구상이 잘 맞아 떨어졌다”며 “핵심선수 1~2명에 의존하지 않고 선수 전원을 폭넓게 활용한 농구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추 감독은 정규리그 중반까지 선두를 달렸던 게 올 시즌 인상 깊었다며 “처음에 너무 잘 나가서 ‘우리가 이 정도까지 잘해도 싶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잊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는 시즌 중반 부상에서 복귀하자마자 또 다쳤다. 추 감독은 “‘정말 이렇게 까지 안 될 수가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선수 제스퍼 존슨이 헤인즈의 역할을 대신 했다. ‘꼭 죽으란 법은 없구나’하면서 힘을 냈다”고 회상했다.

단신 외국인 선수 조 잭슨은 오리온의 히트작이었다. 그럼에도 추 감독은 고심을 많이 했었다. 잭슨이 시즌 초반 한국 농구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교체설까지 나돌았기 때문이다. 추 감독은 “내가 뽑은 선수인데 잘못된 판단을 했는지 생각했었다. 잭슨이 한국 농구에 어울리지 않다는 말에 사실 많이 흔들렸다”고 고백했다. 잭슨은 미국 농구 명문 멤피스대 시절부터 추 감독이 눈여겨봤던 선수다. 잭슨은 추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잭슨은 챔프전 6경기에서 평균 23득점을 해내며 화끈한 공격 쇼를 펼쳤다.

추 감독은 헤인즈와 잭슨의 조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는 “괜찮았다. 적어도 올 시즌 오리온이라는 팀에 가장 어울리고 적합한 선수들이다”라고 생각했다. 이어 “잭슨 영입으로 우리 가드들이 많이 뛰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춰서 필요한 순간에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며 제자들이 앞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이승현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추 감독은 “정말 잘해줬다. 공수에서 정말 믿음직한 선수다. 앞으로 외곽에서 조금 더 다양한 기술들을 익혀서 ‘전천후 포워드’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추 감독은 앞으로 ‘우승 쌓기’에 도전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올 시즌 오리온 농구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빅맨 없이도 전체가 함께 하는 농구 말이다. 팀 디펜스를 강화하면 다음 시즌에는 더 섬세한 농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팬들에게도 질 높은 농구를 보여주고 싶다. 선수들도 이번 우승으로 큰 자부심이 생겼을 거라 생각한다. 이참에 조금 더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끝으로 추 감독은 “힘들 때마다 항상 곁에서 응원해주고 고생했는데 식구들을 너무 챙기지 못했다.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떠나서 함께 휴식을 취하고 싶다”며 든든한 지원군이 돼줬던 가족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2003년 여수 코리아텐더에서 초보 사령탑 신고식을 치른 추일승 감독은 2011년부터 오리온의 지휘봉을 잡았다. 추 감독은 ‘만년 꼴찌팀’으로 패배의식이 짙어져 가던 오리온을 2012-2013 시즌부터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팀으로 이끌었다. 선수에 대한 배려심과 코트 안팎에서의 평정심으로 팀을 재정비하며 부임 5년 만에 프로농구 최정상에 올랐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