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쌩해요.”
서울 강북권 한 새누리당 후보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인사할 때 곤혹스럽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전·월세사는 젊은 분들이 60% 정도 되는데 여당 후보라면 명함도 잘 안받는다”며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면 보수당에 유리하다는 얘기도 옛말”이라고 전했다.
수도권 전체 가구 중 아파트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도심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경우 자산 수준이 높아져 유권자 정치 성향도 보수화된다는 게 정치권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수도권 신규 아파트의 경우 입주민 상당수가 무주택자(세입자)로 전세대란과 맞물려 정부 비판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총선을 앞둔 정치권도 대단지 신규 아파트 표심 향배에 주목하며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신규 아파트 입주로 바뀐 표밭=31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19대 총선 직후인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은 총 37만1084가구다. 신도시가 들어선 경기 김포갑·을엔 2만5000가구에 달하는 아파트가 신규 공급돼 유입 인구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 또 고령인구 비율이 높았던 선거구였던 인천 중·동·강화·옹진의 경우 검단신도시가 조성으로 20~30대 인구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표밭 자체가 바뀐 것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영통이 포함된 경기 수원정은 주민 평균연령 33.8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지역구로 꼽힌다. 서울에선 강서갑·을과 서대문을, 성동을, 마포갑을 포함해 10개 선거구에 3000가구 이상 아파트가 새로 들어섰다. 이들 지역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당선인과 2위와의 득표차가 2000표 미만인 곳이 많아 신규 아파트 입주민의 표심이 판세를 좌우할 핵심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세대란 표심 바꾸나=서울에선 아파트 단지 신규 조성 등이 선거판세를 좌우하는 현상이 이어져왔다. 2008년엔 뉴타운 개발 바람에 힘입어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 48개 선거구 중 40석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19대 총선에선 ‘미국발 금융 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로 뉴타운 개발이 잇따라 좌초되면서 새누리당은 16석을 얻는데 그쳤다.
여야 후보들과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이미 꺽인 상황에서 이번 선거는 ‘전세대란’에 따른 분노 투표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경우 임대비율이 높고 젊은 세대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야당이 유리할 것이란 의견이 많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치솟는 전세 가격을 못 견뎌 주로 30대들이 집중적으로 서울 외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나타났다”며 “전세 난민이 몰린 지역의 경우 진보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도 “40대 중반 이전의 무주택자의 경우 정부에 굉장히 비판적이라는 것은 여야 후보 모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후보들 아파트 표심 잡기 ‘올인’=아파트 단지의 경우 경제 수준과 관심사가 비슷해 표 쏠림 현상이 심하다. 이 때문에 단위 신규 아파트가 들어선 지역의 현역 의원들은 아파트 집단 민원 해결을 의정활동 1순위로 삼는 경우가 많다.
가재울뉴타운 등이 조성되면서 19대 총선 때보다 1만 가구 이상이 늘어난 서울 서대문을의 정두언 의원의 경우 가재울3구역에 방음벽을 설치하고, 경전철 신설 공약 등을 선거 주력 홍보 상품으로 내걸었다. 30~40대 젊은 부부들이 많이 유입돼 교육문제에 관심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더민주 민병두(동대문을), 홍익표(성동을) 의원 등은 명문 학교 유치 등을 핵심 공약으로 마련해 뉴타운 지역 표심에 호소하고 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기획]전세대란이 수도권 접전지 판세 흔들까-신규 입주 아파트 표심의 향배는
입력 2016-03-31 16:34 수정 2016-03-31 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