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경찰은 절도 의심 신고라도 당장 현장 조치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 12시간까지 출동을 미루기로 했다. 민원이나 상담성 신고에는 아예 출동을 하지 않는다.
경찰청은 다음 달 1일부터 112신고 출동 단계를 기존 3개(코드1~3)에서 5개(코드0~4)로 세분화하고 코드4에 해당하는 민원·상담성 신고에는 출동하지 않기로 했다고 30일 밝혔다.
긴급하지 않은 112신고를 처리하느라 긴급 신고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최소화한다는 취지다. 경찰은 2009년 112신고 출동 체계를 현 3단계로 나눴지만 긴급, 비긴급 신고 간 출동 시간에 별 차이 없었다고 한다. 기존 체계에서 코드1은 긴급, 코드2는 비긴급, 코드3은 비출동 신고에 해당한다.
새 체계는 코드 1을 코드0과 코드1로, 코드2을 코드2와 코드3으로 나눴다.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 기존 코드3은 코드4가 된다.
코드0은 코드1 중에서도 신고자와 통화하는 도중에 출동 지시가 필요할 만큼 급박한 사건이다. 누군가가 여자를 강제로 차에 태워 갔다거나 여자가 비명을 지른 뒤 끊긴 신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코드1은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임박했거나 진행 중인 경우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직후도 포함된다.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려고 한다거나 주차된 차문을 열어보고 다닌다는 신고를 예로 들 수 있다. 코드0과 코드1은 최단시간 안에 출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코드2는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잠재적 위험이 있거나 범죄 예방 등에 필요한 상황이다. 식당과 술집 등에서 영업이 끝났는데 손님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집에 와보니 도둑이 들었는지 집이 난장판이라는 내용 등이 해당한다. 이런 신고는 긴급 신고인 코드0과 코드1을 처리하는 데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가급적 신속히 출동한다는 방침이다.
코드3은 즉각적 현장 조치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수사나 전문 상담 등 경찰 역할이 필요한 경우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금반지가 없어졌다거나 며칠 전 폭행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식으로 접수된 신고다. 관할 경찰은 신고자와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최대 12시간 안에 출동한다.
코드4는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없는 민원·상담성 신고로 경찰관이 현장에 가지 않는다. 다른 기관 업무나 민사 신고, 경찰 조치에 대한 불만 등은 해당 창구를 안내한다. 경찰과 관련이 없는 생활 민원은 110번(국민권익위원회)이나 120번(지방자치단체)으로, 경찰 관련 민원 사항은 182번(경찰청)에 전화하면 된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단순 서비스 요청은 112가 긴급 신고 창구임을 고지한 뒤 종결할 예정이다.
112신고 출동 건수는 2011년 711만6764건에서 지난해 1071만9174건으로 4년 새 50.6% 늘었다. 지난해 접수된 전체 112신고는 1910만4883건으로 이 중 코드1인 긴급 신고는 11.3%인 215만228건이었다. 비긴급은 44.9%, 비출동 신고는 43.9%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112신고를 했지만 비긴급 신고로 분류돼 경찰 출동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이는 긴급 신고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임을 양해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새 방침이 112신고 상당수를 차지하는 비긴급 신고에 대한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긴급 신고에 더욱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방침이 ‘웬만한 신고’에는 서둘러 출동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긴급 신고를 판단하는 내부 기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비긴급으로 분류된 상황이 갑자기 긴급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피해자나 목격자 등이 다시 신고해야 한다. 범죄피해 예방을 위한 ‘골든타임(적기)’을 오히려 놓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경찰은 새 112신고 출동 체계에 맞춰 구체적 처리 요령을 마련할 예정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112 신고해도 이럴 땐 경찰 안 옵니다
입력 2016-03-31 14:16 수정 2016-03-31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