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지컬 '마타하리', 눈을 사로잡는 볼거리에 비해 힘이 부족한 스토리

입력 2016-03-30 17:14
뮤지컬 ‘마타하리’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4일간의 프리뷰를 마치고 지난 29일 막을 연 ‘마타하리’(6월 12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는 올해 한국 뮤지컬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뮤지컬계에 비엔나 뮤지컬 붐을 일으킨 EMK뮤지컬컴퍼니가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등 브로드웨이 크리에이티브팀과 손잡고 3년간 개발해 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부터 초연 공연까지 모두 합한 제작비가 무려 125억원에 달하는 등 한국 창작뮤지컬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

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 당국에 체포돼 총살당한 무희 마타하리를 그린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무대다. 와일드혼의 음악, 아이반 멘첼의 대본, 잭 머피의 가사, 제프 칼훈의 연출 및 안무, 제이슨 하울랜드의 편곡 등 주요 스태프만 보면 과연 한국산 창작뮤지컬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한국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의 무대세트는 해외 스태프보다 더 빛나는 역할을 했다. 제작비의 8할을 썼다고 할 만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무대 세트는 시시각각 변주하며 공간을 입체적으로 연출했다.

오필영은 앞서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드라큘라’ 등 전작에서도 기능적이고 입체적인 무대를 선보인 바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 기량을 맘껏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한정임의 섹시하고 파격적인 의상 등 기술적인 부분을 맡은 한국 스태프들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공연 내내 볼거리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압도적이고 입체적인 무대에 비해 아쉬운 것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스토리다.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마타하리의 이야기는 임팩트가 없었다. 마타하리를 이용하면서도 사랑하게 된 라두 대령, 마타하리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인 파일럿 아르망 등의 관계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게 아쉽다.

이날 러닝타임은 2시간50분으로 3시간을 넘겼던 프리뷰 때보다 10분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1막이 무려 1시간반으로 2막에 비해 전개가 다소 늘어진다. 특히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1막은 마타하리의 쇼 장면에선 흥겹다가 막상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힘이 빠진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드라마에 제대로 녹아있지 않은 탓이다. 음악의 경우 선율을 중시하는 와일드혼답게 넘버들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면서도 무난한 편이다. 다만 귀에 꽂히는 한두방의 강력한 넘버가 없는 게 아쉽다.

이번 작품은 ‘옥주현의, 옥주현에 의한, 옥주현을 위한’ 말이 나왔을 정도로 타이틀롤을 맡은 옥주현의 비중이 크다. 옥주현은 정평이 난 노래는 물론 관능적인 춤까지 능숙하게 해냈다. 아르망 역의 송창의와 라두 역의 류정한은 캐릭터에 잘 맞았지만 간간히 불안정한 가창을 보여줘 아쉬움을 줬다. 특히 국내에서 손꼽히는 가창력의 소유자인 류정한이 이날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여러 차례 실수한 것이 안타까웠다. 여기에 임춘길이 맡은 MC는 연극적인 마타하리의 삶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캐릭터지만 대사 전달이 잘 안된 탓에 오히려 드라마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마타하리’는 초연인 것을 감안할 때 그동안 해외 스태프와 작업한 창작뮤지컬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앞으로 작품을 좀더 수정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