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 ‘단일화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경제 실정 심판론’과 국민의당이 강조하는 ‘양당 심판론’은 요란한 야권연대·단일화 구호에 가려지고 있다. 하지만 더민주가 양보 없이 소수당 후보 ‘주저앉히기’식으로 야권연대를 추진할 경우 단일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민주는 30일에도 야권연대를 촉구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중앙선대위원장단 회의에서 “선거가 거의 임박해 있기 때문에 각 지역에 입후보 하신 분들이 서로 협의하면 연대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도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역구 단일화 어떤 형태가 됐든 간에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다 하는 게 좋겠고 노력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특히 정의당과의 연대와 관련해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면 (심상정 대표 지역구인) 고양갑부터라도 단일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당 지도부는 겉으로는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물밑에서의 단일화 요구를 차단하고 있다.
후보 간 ‘초치기’ 단일화에 대한 비판 여론도 나오고 있다. ‘당 대 당’ 차원의 연대는 ‘지역구 나누기’라던 더민주가 이제 와 후보 간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소수당 후보 사퇴를 압박하고, 유권자의 표심을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더민주 지역구 후보들은 연일 단일화를 요구하면서도 먼저 후보직을 양보하겠다는 의사는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에서 야권연대를 요구하는 일부 후보들도 주로 다른 야당 후보보다 지지율이 앞서고 있는 후보들이다. 결국 ‘나로 단일화해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정의당이 연일 더민주를 향해 ‘패권주의’ ‘갑질’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단일화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진행되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제 경남 창원·성산에서 더민주 허성무 후보와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노 후보로 단일화하는 데 합의했지만 더민주 일부 당원들은 “명분 없는 단일화”라며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고양갑에 출마한 더민주 박준 후보도 페이스북에 “단일화에 의해 희생당하는 후보와 그 단일화로 수혜를 얻는 사람은 왜 늘 같을까”라며 “저는 지난 4년 전에 단일화에 승복한 경험이 있다. 제가 또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민주통합당(현 더민주)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됐지만 문 후보는 대선에서 100만표 이상으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후 양측 지지자들의 앙금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상태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가 정의당 노회찬 후보에게 후보를 양보했지만 노 후보는 이기지 못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야권연대는 그동안의 연대와는 달리 의석수가 많은 당이 먼저 양보하지 않는 연대가 됐다”면서 “특히, 더민주는 국민의당 궤멸과 야권연대라는 모순된 전략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이슈분석]또 다시 열린 야권 단일화 블랙홀
입력 2016-03-30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