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 최대 오페라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의 첫 한국인 주역, 소프라노 임세경

입력 2016-03-30 14:54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1만5000석)에서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열리는 세계적인 야외 오페라 축제다.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이다’를 처음 공연한 이후 100년 넘게 개최되는 동안 오페라 관계자와 팬들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유럽 각국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들의 원조이기도 하다.

102년째이던 지난해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첫 한국인 주역이 등장했다. 바로 페스티벌의 대표 레퍼토리인 ‘아이다’의 타이틀롤을 맡은 소프라노 임세경(41)이다. 그가 4월 15~17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수지오페라단 ‘가면무도회’로 지난 2014년 서울시오페라단 ‘아이다’에 이어 2년만에 한국 관객과 만난다.

30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오페라계 ‘꿈의 무대’인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한국인 첫 주역의 영예를 안았지만 당시를 돌이켜보면 솔직히 씁쓸했다”면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 됐지만 페스티벌 측에서 유명한 소프라노들 중심으로 리허설 시간을 배정하다보니 1회 출연하는 나는 리허설 없이 무대에 올라가야만 했다. 그래서 공연 당일(8월 9일) 오후에 오케스트라도 없이 혼자서 연습한 뒤에 본공연에 출연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었다”고 밝혔다.

그의 기량을 확인한 페스티벌 사무국은 그에게 올해 ‘아이다’와 ‘일트로바토레’에 9회 출연해 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가 올해 스위스의 대표적 여름축제인 아방쉬 페스티벌(6월 30일~7월 15일)의 ‘나비부인’에 출연하기로 이미 계약한 상태여서 내년으로 캐스팅을 미뤄야 했다. 그는 “국내에선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 워낙 유명하니 아방쉬 페스티벌을 포기하라고 권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먼저 한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내 기량을 인정하고 다시 캐스팅을 제안한 만큼 처음 목표는 달성됐다고 본다. 그동안 극장이나 페스티벌에서 한번 무대에 선 뒤엔 반드시 다음에도 캐스팅 제안을 받으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그는 실력만으로 유럽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 우뚝 섰다. 수적으로 귀한 테너와 달리 소프라노는 워낙 층이 두터워서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는 탁월한 가창력과 열정적인 연기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게다가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지만 꿋꿋하게 가족까지 돌봐 왔다. 한양대 출신인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졸지에 가장이 됐다. 3년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족의 생계를 꾸린 그는 1000만원을 겨우 모아 2001년 유학길에 올랐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마친 뒤 2004년 3년짜리 라 스칼라 극장 전문 연주자 과정에 합격해 빠르게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는 “초기엔 단역을 많이 맡았는데, 솔직히 주역에 캐스팅 되는 것보다 좋았다. 단역은 공연에 모두 출연할 수 있어서 몇 번만 출연하는 주역보다 결과적으로 개런티 총액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가족의 생활이 점차 안정되는 한편 그에게도 주역의 기회가 잇따랐다. 유럽 각국의 오페라극장을 오가며 차근차근 스펙트럼을 넓혀온 그는 지난해 1월 세계 오페라계의 주요 극장 가운데 하나인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나비부인’의 주역으로 호평받았다. 그는 올해 10월 같은 작품 공연에도 다시 캐스팅됐다.

소프라노는 음색에 따라 레제로-리리코-스핀토-드라마티코로 크게 나뉘는데, 그는 서정적인 리리코와 극적인 드라마티코의 중간인 스핀토에 가깝다. 그가 그동안 자주 출연한 ‘아이다’의 아이다나 ‘나비부인’의 초초 등이 스핀토에 적합한 역할이다. 그는 “지금까지 각각 30~40개 프로덕션에 출연했던 ‘아이다’나 ‘나비부인’으로 런던 로열오페라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메이저 극장에 진출해 기량을 인정받은 뒤 ‘운명의 힘’ ‘가면무도회’ ‘마농’ 등 내가 잘 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내 음색이 리리코와 스핀토 사이에 있는 만큼 ‘라보엠’의 미미나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등 서정적인 역할에도 늦기 전에 도전하고 싶다”면서 “최근 ‘투란도트’의 투란도트도 많이 제안을 받고 있지만 동양인 소프라노라는 틀에 갇힐까봐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가 이번에 출연하는 ‘가면무도회’는 1792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1746~1792)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세 남녀의 비극적 사랑과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태리 도니제티 극장장인 프란체스코 벨로토가 연출을 맡고, 오페라 지휘의 젊은 거장 카를로 골드스타인이 지휘를 담당한다. 또 테너 프란체스코 말리, 소프라노 비르지니아 톨라 등 이탈리아계 오페라 스타들이 출연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