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에서 실패한 의약품들이 중국에서 ‘패자부활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미국 등 세계 주요시장 진입에 실패한 의약품들이 중국에서 새 활로를 찾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전했다. 각국에서 부작용 등으로 퇴출되거나 규제에 걸렸던 약품들이 중국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제약회사 브리스톨-메이어스큅은 2013년부터 중국 시장 공략을 선택했다. 자회사 브리바닙을 중국 현지에 스타트업 기업으로 신설해 해당 제품을 내놓는 방법이다. 중국 시장에 나와 있는 경쟁사 제품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하버드로스쿨에서 의료윤리를 연구하는 글랜 코헨 교수는 WSJ에 “미국 시장의 경우 신약은 기존 제품보다 효력이 좋다는 걸 증명해야 등록이 가능해 90% 신제품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다”며 “중국은 그런 규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응급발작 치료제인 시네파지드(cinepazide)의 경우는 다른 시장에서 퇴출됐던 사례다. 이 약은 1980년대와 90년대 사이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퇴출당했다.
그러나 금융회사 크레디트스위스 조사에 따르면 이 약품은 중국에서 2010년 이래 최고의 인기 상품으로 자리했다. 제품을 판매하는 시한의약 홀딩그룹에 따르면 이 제품은 유럽에서 판매됐던 제품보다 순도가 높다. 식약관리국은 허가 기준을 묻는 WSJ의 거듭된 취재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중국은 그간 의약품 규제를 철폐해 제약회사들의 자국시장 진입을 도왔다. 2007년에는 중국 식약관리국의 창립멤버이자 1대 국장이었던 정샤오위가 의약품 승인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처형당하기도 했다. 정샤오위가 국장을 맡은 동안 식약관리국은 약 15만 건의 의약품에 판매 허가를 내줬다.
규제가 단순해지자 이를 노려 ‘야매’ 약품도 판을 쳤다. 지난해 식약관리국이 임상실험결과 조작을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지침을 밝히자 접수된 약품 5분의 4 가량이 신청을 철회했을 정도다. 뒤늦게 정부가 지난해부터 규제 고삐를 당기고 있으나 이미 세계적으로 판매가 보편화된 C형 간염 치료제 등 신약 판매를 늦추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평가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