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수백, 수천장의 반성문을 매일매일 썼을 겁니다.”
재판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피고인 오모(38)씨는 A4용지 5장 가량의 반성문을 꿋꿋하게 읽어 내려갔다.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는 5시간여 동안 오씨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생을 끝내려 하는 여자친구 이모(당시 39세·여)씨의 부탁으로 그녀의 목을 졸라 살해한 그였다. 결국 남은 건 회한과 눈물뿐이었다.
지난해 12월 16일 밤, 오씨는 서울 강동구 자신의 원룸에서 여자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줬다. 여자친구 이씨는 이혼 후 홀로 2명의 자녀를 키우며 오씨에게 자주 ‘죽고 싶다’는 말을 했다. 생활고와 스트레스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걱정에서였다. 이씨는 직접 유서를 적어와 자신을 죽여 달라고 오씨에게 부탁했다. 오씨는 그런 이씨를 1시간여 말렸지만 이씨는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오씨는 이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이씨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오씨는 여자친구의 뒤를 따르려 했다. 주변 공중전화로 119에 전화해 “내가 사람을 죽였으니 집에 가 보라”고 신고했다. 이후 인근 빌딩으로 올라가 투신하려 수차례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씨는 12시간여 지난 오후 3시쯤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에게 체포됐다.
경찰은 오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촉탁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 제252조에 따르면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50조에 규정된 살인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하는 데 비해서는 가벼운 형이다. 검찰은 오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검찰 역시 오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동의했다. 담당 검사는 “연인이었던 피해자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피고인이 이 자리까지 왔다”면서도 “이런 점은 피고인의 안타까운 사정이지만 사정은 고려하되 절대 피고인에 대한 동정에 치우쳐선 안 된다”고 배심원들에게 당부했다.
오씨는 여자친구가 홀로 세상을 등질까 두려웠다고 했다. 오씨는 법정에서 “(여자친구가) 자기가 연락이 안 되면 혼자 어디 가서 잘못된 줄 알라고 말을 했다. 저는 그렇게 되는 게 너무 무서웠다”며 “정말 못 견디겠으면 내가 같이 갈 테니까 상상 이상의 행동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날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둘 다 사랑했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여자친구를 따라 삶을 포기하려던 오씨는 마음을 바로잡고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이런 선택에는 담당 검사의 조언이 작용했다고 했다. 오씨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을 때 검사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밥도 안 먹고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차라리 형량 세게 받아서 정신 차릴 때까지 감옥에 있던지, 아니면 빨리 정신 차려서 죗값 받고 남겨진 아이들 인생 뒤에서라도 도와줘라. 그게 고인이 된 피해자에 대한 예의다’라고 했다. 그 말 듣고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고 했다.
오씨는 마지막 변론에서 “제가 좀더 성숙했더라면 (여자친구와) 같이 사는 걸 선택했어야 했다. 너무 후회가 된다”며 “이 모든 게 전부 저의 잘못이다. 그 순간 잘못 선택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결코 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동욱)는 29일 오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판단했다. 이중 5명이 징역 5년, 2명이 징역 6년의 양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촉탁이 있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 가치가 있다는 점, 피고인의 적극적인 만류나 설득이 없었던 점, 피해자의 남겨진 두 자녀의 상실감과 고통 등을 고려했다”며 “피고인의 범죄전력이 없는 점, 자발적으로 신고한 후 일관되게 자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눈물바다 된 법정… 여자친구 마지막 소원 들어 준 남성 징역 5년형
입력 2016-03-29 22:20 수정 2016-03-30 14:01